얼마 전, 저녁 식사로 아내가 닭갈비를 해 주었다. 닭갈비를 아주 좋아해서 자주 단골 닭갈비집을 이용했는데, 아내가 그 맛을 내보겠다고 요리 책을 보아가며 애를 쓴 것이다.
한점 먹어보고는 내가"역시 그 집 맛은 아니네."라고 했더니, 아내가 내심 섭섭했나 보다. 그날 저녁, 아내가 나에게 이리 좀 와 보라고 하면서 컴퓨터 화면을 보여 주었다.
뭔가 싶어 보니까 화면에 뜬 것은 신혼 때 내가 아내에게 보냈던 메일들이었다.
--자기야, 오늘 메뉴가 뭘까 궁금했는데 오징어국이네. 와∼회사 식당 오징어국이랑은 비교가 안 돼. 너무 맛있었어. 최고야!
--자기야, 고픈 배를 움켜쥐고 집에 왔더니 세상에, 오늘 울 자기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게다가 맛있는 김치볶음밥까지 세상에서 그런 김치볶음밥은 처음 먹었어. 고기가 씹히는 게 너무 맛있더라.
--자기야, 이제 저녁 먹고 청소했어. 이제 운동하러 가려고, 난 울 자기가 있어서 너무 행복해.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모르겠어.
등등 온갖 닭살스러운 표현들이 가득한 것이 아닌가! 정말 그런 시절이 있었나, 그리고 내가 그런 메일을 보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로웠다.
5년 전, 갓 결혼한 우리는 깨소금 같은 신혼을 보냈다. 과외교사였던 아내는 오후에 나가서 밤늦게 왔고, 나는 7시에 퇴근하면 아내가 차려놓은 저녁을 먹고 청소를 해놓고 아내를 기다렸다. 아내는 따뜻한 밥을 차려주지 못해 미안해했지만,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왜냐하면 자취생활 10년째, 저녁은 매일 라면이나 회사 식당 밥으로 때웠는데 매일매일 바뀌는 저녁 메뉴를 기대하며 퇴근하는 게 얼마나 흥분되었는지 모른다. 더구나 아내의 음식 솜씨가 무척 뛰어난 편이라 더 그랬었다.
그런데 결혼한 지 5년이 지나자 아내의 정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간큰 남자'가 되었으니 아내가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무척 서운했을 것이다.
"이거 봐라.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모르겠어 라고 했네. 앞으로 잘해. 알았지?"
"에이∼알았다니까. 근데, 이제 이 메일들 좀 지우지 그래? 너무 닭살이다."
"왜 지워? 난 평∼생 간직하고 볼 건데?"
이런 사랑싸움까지 하게 만든 신혼 시절의 닭살 메일, 요즘은 아내한테 메일은커녕 문자 한 통 제대로 날려주지 않는 간큰 남자가 되었으니, 오늘 아내에게 정성스러운 편지 한통 써볼까 보다.
이신헌(대구 달서구 상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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