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는 강물처럼'은 아름다운 강을 배경으로 세 부자(父子)의 가족사를 그린 영화다.

푸른 숲 사이로 흐르는 강에서 긴 플라잉 낚싯줄을 휘두르며 낚시하는 포스터는 영화가 개봉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인기다. 오후 햇살을 받아 부서지는 윤슬(물에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습)과 허공의 낚싯줄, 그 속에 녹아든 인간의 모습이 그렇게 표일할 수 없는 장면이다.

플라잉 낚시는 가짜 미끼를 달아 흐르는 계곡에서 송어를 낚는 낚시다. 못이나 저수지의 내림 낚시와 달리 계곡을 따라다니며 물고기를 찾아다녀야 한다. 어디에, 어떻게, 언제 던지느냐, 그리고 대상을 찾아다니며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버지는 "낚시는 예술이고 인생"이라고 가르친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가족애와 삶에 대한 성찰이 강과 낚시에 투영된 작품이다. 넓게 보면 삶의 성찰, 자연의 경외심을 담고 있지만, 스토리는 형제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형제는 같은 DNA를 가지고 태어난다. 형의 DNA나 동생의 DNA가 따로 있지 않다. 그럼에도 판이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형제다.

영화 속에서 형 노만은 아버지의 삶을 그대로 빼닮았다. 유머도 없고, 조용히 사색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동생 폴은 도전적이고, 격을 파괴하며, 늘 일탈을 꿈꾼다. 백인만 출입하는 카페에 인디언 처녀를 데려가고, 도박하고, 술을 마시고,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낚시도 그렇다. 노만은 아버지가 가르쳐 준 낚시법을 고수하지만, 폴은 자신만의 리듬으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한다. 더 멀리 던지기 위해 더 넓은 허공에 낚싯줄을 흔든다. 험한 물살에 떠내려가면서도 낚싯대를 놓지 않는다. 새로운 세상과 자유에 대한 갈구가 낚시법만큼 공격적이다.

시인 이규리는 둘의 다른 삶을 시계로 그려내고 있다. 아버지는 메트로놈(박자기)을 가져다 놓고 4박자의 캐스팅(낚싯대를 던지는 기술)을 가르친다. 방향은 10시에서 2시 사이. 그러나 폴은 늘 그 방향의 밖에 낚싯줄을 던졌고, 사랑을 했다. 2시에서 10시 방향은 아버지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야생과 자유의 세계다.

그러나 탈출은 늘 위험을 동반하듯, 폴은 결국 주검으로 돌아온다. 총에 맞아 골목에 버려진 동생, 형은 "손뼈가 다 부러졌다"고 아버지에게 전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조용하게 묻는다. "어느 손이냐?" "오른 손이요," 아버지는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들의 죽음조차 낚시와 연결시킨 아버지의 애절함이 잘 묻어난다.

화가 손파는 3색의 그림을 그렸다. "검은색은 신이고, 푸른색은 자연이고, 붉은색은 인간"이라고 설명했다. 3등분한 그 속에 강물이 흐르고 낚싯줄을 흰 선으로 그려냈다. 단속(斷續)적인 선이 애써 살아가는 폴의 모습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동생 폴은 빅 블랙풋 강둑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을 초월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예술작품 같았다. 어슴푸레 한 계곡에 홀로 있을 때면 모든 존재가 내 영혼과 기억, 그리고 강의 소리, 낚싯대를 던지는 4박자 리듬, 고기가 물리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모두 하나의 존재로 어렴풋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로 녹아든다. 그리고 강이 그것을 통해 흐른다.(A river runs through it)'

이제는 혼자 외롭게 몬태나 강에서 낚시를 하는 할아버지 노만의 마지막 내레이션이다. 이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껴안고, 세상을 초월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 모든 기억이 흐르는 강물처럼 사라지는 덧없는 것일까. 그러나 흐르는 강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녹아 흐를 뿐이다. 갈등도 사랑도 죽음도 모두 녹아 흐르는 것, 그것은 바로 삶이 아닐까.

아들 폴이 죽은 후 마지막 설교에서 아버지는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가족이다"고 말한다. 5월 가정의 달 마지막 날, 길게 여운을 남기는 말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1992년)

감독:로버트 레드퍼드

출연:크레이그 쉐퍼, 브래드 피트, 톰 스커릿

러닝타임:123분

줄거리:1900년대 초. 미국 몬태나의 계곡에 송어 낚시를 즐기는 부자(父子)가 있다. 이들에게 낚시는 예술이자 종교이다. 목사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강에서 인생을 배우도록 가르친다. 장성한 큰 아들 노만(크레이그 쉐퍼)은 동부의 대학에 들어가 문학을 공부하고 동생 폴(브래드 피트)은 고향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낚시를 인생의 최고 목표로 여기며 살아간다. 신중하고 지적인 형과 달리 동생은 도전적이며 자유분방해 형제애가 깊으면서도 둘은 경쟁 관계이다. 낚시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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