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의 장점이 뭔지 아나? 이제 끊었으니까 한 대쯤은 괜찮다는 거야."
짐 자무시 감독의 '커피와 담배'는 커피가 놓여 있는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11편의 단편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담배와 커피에 대한 수다를 떤다. 시커먼 물을 들이켜며 입에서는 허연 연기를 뿜어내며 등장인물들은 나른하고 따분한 일상을 입담으로 풀어내고 있다.
커피와 담배는 극단적인 애호와 혐오를 가진 기호식품이다. 피아의 구분이 뚜렷하고, 좌석의 구분도 뚜렷하다. "그 커피 아직 마셔." "담배 그만 끊어.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 대화 자체가 방어적이고, 또 공격적이다.
타인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어떻게 된 셈인지 담배와 커피에 대해서는 모두 강렬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담배와 관련된 얘기를 한편 들었다. 지난 어버이날이었다.
기자는 어머니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술을 한잔 했다. 여든둘의 어머니는 요즘도 곧잘 술을 드신다. 그리고 담배도 즐기시는 편이다. 좀 줄이라고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얼마 더 살끼라꼬"라면서 늘 담배를 끼고 사신다.
몇 잔의 술이 돌아 얼큰하게 취했을 때 어머니께 물었다. "아버지하고 연애하던 얘기해줘요." 어머니는 "야가 무신 소리하노? 얄궂게"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면서 담배에 불을 댕겼다. 어머니는 '88디럭스'를 피운다. 담뱃값도 싸지만, 길어서 중간에 한번 끄고 다시 피울 수 있어 좋다고 한다.
길게 담배연기를 뿜더니 "내가 담배를 언제부터 피웠는지 아나?"라고 물었다. "그때가 내 나이 서른도 안 됐을끼다." 그러면서 옛날 얘기를 들려줬다.
부모님은 청송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농사라고야 남의 밭 몇 마지기 짓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마을 훈장도 하시면서 한학에 심취해 있었다.
그때 옆집에 20대 초에 남편을 잃은 청상과부가 살고 있었다. 그 분은 혼자 사는 것이 적적했던지 일찍부터 담배를 피웠고, 친하게 지내던 어머니가 담배에 손을 댄 것도 그 과부 때문이었다.
아녀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이 마뜩잖은 것은 예전에 더 심했다. 물론 아버지도 담배를 피웠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의 흡연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집에 들어올 때 그 전에 비해 더 큰 헛기침을 하며 들어오는 것이 다였다. 그러던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일 나갈 때마다 부엌 봉창 앞에 담배 두 개비를 두고 가셨다고 한다. 매일 어머니는 아버지가 두고 간 두 개비를 피우며 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비 수도 늘었다. 6개에서 8개, 10개비. 1969년 대구로 이사 올 때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그 담배가 참 맛있었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9년째다. 살아계실 때 두 분은 성격차이로 참 많이 다퉜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한번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내색한 적이 없었다. 이날 어머니는 언뜻 비췄다. "늘 고마웠지. 참 고마웠다고 생각해."
담배로 느끼는 부모님의 애틋한 연애담, '금연의 날'(31일) 생뚱맞은가?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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