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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메조소프라노의 역할

▲ 오페라
▲ 오페라 '아이다'의 한 장면.

지난번에는 오페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소프라노의 역할, 특히 주인공으로서의 소프라노의 여러 가지 종류와 면모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소프라노보다 좀 더 낮은 목소리인 메조소프라노는 오페라에서 주인공은 못하고 늘 조역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메조소프라노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솔직히 원칙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에서 한 사람의 좋은 메조소프라노가 나타나면 그들은 일단 "좋은 암네리스나 아주체나가 생겼군"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탈리아에서 메조소프라노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대표적인 배역이 바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의 암네리스나 아니면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중의 아주체나 역이라는 뜻도 되는 것이다.

'아이다'에 나오는 암네리스는 프리마돈나인 아이다가 사랑하는 테너를 사랑하는 여인으로서, 아이다의 연적(戀敵)인 셈이다. 전통적인 이탈리아 비가극 즉 오페라 세리아에서 메조소프라노가 가장 많이 맡는 역할은 이렇듯이 소프라노의 라이벌이다. '아이다'의 암네리스를 필두로 하여 베르디의 '돈 카를로'의 에볼리, '나부코'의 페네나, 벨리니의 '노르마'의 아달지사, 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의 조반나, '마리아 스투아르다'의 엘리자베타, '로베르토 데브뢰'의 사라,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의 라우라, 칠레아의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의 공작부인 등 유명한 메조소프라노 역들은 소프라노의 라이벌인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소프라노는 주인공이며 메조소프라노는 소프라노의 연적을 맡는다. 그 다음의 배역들은 차라리 연적보다도 더욱 비중이 떨어지는 역할들이다. 즉 그들은 대부분 주인공의 어머니나 친구, 노인, 점쟁이, 집시 같은 역들이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메조소프라노가 프리마돈나인데, 이런 것은 이탈리아 비가극에서는 무척 드문 경우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에서 메조소프라노로 태어나면 영영 주인공은 꿈꿀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녀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경우는 두 길이 있는데, 하나는 이탈리아의 희가극 즉 오페라 부파의 여주인공을 맡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아니라 프랑스 오페라를 부르는 것이다.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 특히 로시니의 희가극들에서는 메조소프라노가 여주인공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의 로지나, '라 체네렌톨라(신데렐라)'의 안젤리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의 이사벨라 등은 모두 메조소프라노다. 로시니는 특별히 메조소프라노를 좋아하였던 것이다.

그 외에 프랑스 오페라의 경우에는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메조소프라노들이 프리마돈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은 프랑스 오페라의 특징의 하나인데, 프랑스 관객들의 취향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메조소프라노 여주인공이 갖는 독특한 분위기들이 프랑스 오페라의 특징을 규정하는 데 한몫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프랑스 오페라인 비제의 '카르멘'같은 경우가 메조소프라노를 주인공으로 하는 대표적인 프랑스 작품이다. 이 경우 소프라노인 미카엘라 역이 도리어 카르멘의 라이벌로 나오게 된다. 그 외에도 토마의 '미뇽', 생상스의 '삼손과 델릴라', 마스네의 '베르테르' 등에서 모두 메조소프라노가 프리마돈나이다.

박종호 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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