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기록의 사나이' '살아있는 전설'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 쳐도 3할'. 삼성 라이온즈 양준혁을 소개할 때 따라붙는 말들이다. 그는 이미 숱한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처음으로 개인 통산 2천 안타를 돌파했고 15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과 세자릿수 안타 기록을 썼다. 불혹을 앞둔 나이에 최고령(만 38세 4개월 10일) '20(홈런)-20(도루) 클럽'을 달성했다. 그는 29일까지 2군에서 10여일간 훈련을 한 뒤 30일 1군에 복귀, 4타수3안타1볼넷2득점을 기록하는 등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대한민국 대표 타자 양준혁의 2군 생활을 들여다봤다.
◆낯선 경험
양준혁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삼성 라이온즈와 2년간 계약금 6억원, 연봉 7억원 등 20억원에다 옵션을 더하면 최대 24억원에 이르는 대형 계약을 다시 맺었다. 하지만 올 시즌 개막 후 계속된 타격 부진에 시달렸다. 급기야 지난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양준혁은 2타석에 나서 삼진과 2루수 앞 땅볼로 물러난 뒤 신인 모상기와 교체됐다.
다음날 두산전에서는 아예 더그아웃에만 머물렀다. 이날 경기 후 2군행이 결정됐다. 이튿날 오전 원정 숙소에서 짐을 꾸렸다. 팀은 두산과 1경기가 더 남아 있어서 서울에 남고, 그는 홀로 대구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이대로 죽으러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그는 19일부터 경산 볼파크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오전 8시 30분 일어나 차를 몰고 집(수성구 범어동)을 나섰다. 아침밥은 볼파크 식당에서 챙겨 먹었다. 시즌 중에 1군 선수가 볼파크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삼성 2군이 기아 타이거즈 2군과 경기를 갖기 위해 원정을 떠나 한산한 가운데 묵묵히 배를 채웠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밥 먹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시즌 중에 여기서 밥 먹은 적이 있었나? 밥맛이 있을 리 없지만 끼니를 거를 순 없죠. 훈련을 하려면…. 선수들과 살갑게 지내냐고요? 아무래도 까마득한 후배들이 어려워하는 것이 보여요." 그럴 수밖에. 2군 선수들에게 그는 우상이다. 그를 보면서 야구 선수의 꿈을 키운 선수도 많다.
본격적인 훈련은 오전 10시부터다. 40여분간 타격 훈련을 한 뒤 달리기를 한다. 점심을 먹고 1시간 정도의 웨이트 트레이닝이 기다리고 있다. 낯선 느낌도 잠시. 훈련에 매달리다 보면 모든 것을 잊는다. 집으로 돌아와 쉬다가 다시 나선다. 헬스클럽에 가기 위해서다.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이 국내에 들어오면 겨우내 몸을 만드는 곳. 이곳에서 다시 2시간 동안 훈련한다. "온몸에 알이 밴 상태죠. 체력 훈련을 하루에 최소한 3시간 이상 하니까 그런 거예요. 같은 훈련을 반복하는 데다 아침에 나섰다가 오후 8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직장인의 일상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부진, 그 원인
2군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양준혁은 41경기에 나섰지만 타율은 0.199에 불과했다. 페이스가 늦게 올라오는 편이긴 하지만 1993년 프로 무대에 데뷔, 9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한 그가 받아든 성적표라고는 믿기 어렵다. "올해 4월(타율 0.193)은 내 야구 인생에서 가장 잔인한 달"이라던 양준혁은 결국 선동열 감독과 면담 끝에 스스로 2군행을 택했다.
"2군에서 컨디션을 조절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말을 꺼내기 어려웠어요. 팀 사정도 좋지 않은데 자기만 챙긴다는 오해를 받을까 조심스러웠습니다. 특히 전 모범이 돼야 할 고참이니까. 감독님이 따로 불러서 '내려갈래? 판단은 네게 맡기겠다'고 하셨을 때 도리어 고맙더라고요. '네가 꼭 필요하다' '빨리 돌아올 수 있게 몸 관리를 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죠."
지난해 타율 0.337(2위), 22홈런(4위) 등 발군의 활약으로 팀 타선을 이끌었지만 올해 보여준 모습은 딴판. 말을 아끼던 그에게 부진의 원인을 묻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굳이 변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이겨내고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진짜 야구 잘하는 선수입니다. 내 자신에게 실망한 탓에 스스로에게 화가 날 뿐이죠."
답을 요약하자면 부상으로 인한 훈련 부족이다. "지난해 8월 왼쪽 발목 부상을 당한 뒤 러닝 훈련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스프링캠프 때도 많이 뛸 수 없었고요. 타자는 하체가 생명인데…. 하체가 약해지니 스윙 스피드도 떨어진 거죠. 또 상체로만 스윙하다 보니 잘 맞는 타구가 적어졌어요." 자연히 2군에서 양준혁의 훈련은 하체 단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01년 양준혁은 LG 시절 시즌 중 2군에 열흘 동안 머문 경험이 있다. 시작은 좋지 않았으나 그 해 시즌이 끝났을 때 양준혁은 생애 최고 타율(0.355)을 기록하며 수위타자가 됐다. 양준혁이 올 시즌에도 대반전을 이룰 수 있을까. "젊을 때와 다르니 지금 그리 되긴 힘들겠죠. 물론 그때 경험이 있어 희망을 갖고 2군에 내려올 수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요."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이낙연 "조기 대선 시, 민주당은 이재명 아닌 다른 인물 후보로 내야"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
野, '줄탄핵'으로 이득보나…장동혁 "친야성향 변호사 일감 의심, 혈세 4.6억 사용"
尹공약 '금호강 르네상스' 국비 확보 빨간불…2029년 완공 차질 불가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