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트도 비키니처럼…팝아티스트 낸시랭

루이비통? 사랑하죠…돈? 물론 사랑하죠

▲ 카메라 렌즈 앞에 선 낸시랭의 표정은 풍부하고 다양했다. 늘 그녀 곁을 지키는 고양이는
▲ 카메라 렌즈 앞에 선 낸시랭의 표정은 풍부하고 다양했다. 늘 그녀 곁을 지키는 고양이는 '코코샤넬'이라는 이름의 인형이다. '코코(Coco)'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샤넬'을 만든 프랑스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의 별칭이기도 하다.

'걸어다니는 팝아트' 낸시랭(29). 그녀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늘 평행선을 달린다. 혹자는 'I love dollars'를 외치는 그녀에게 자본주의 그늘을 보고, 어떤 이는 한국 사회의 오래된 '터부'를 깨는 그녀의 몸짓에 통렬함을 느낀다. 어쨌든 대중들은 그녀의 과감한 노출 퍼포먼스와 '아트(art)'에 열광한다.

27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낸시랭을 만났다. 그녀의 품 안에는 영혼을 불어넣었다는 고양이 인형 '코코샤눼~엘'이 안겨 있었다.(그녀는 코코샤넬이 아닌, 코코샤눼~엘이라고 부른다.) "항상 코코샤눼~엘을 데리고 다니세요?" "예, 잘 때만 빼고요" 그녀는 싹싹했고, 잘 웃었다. 귀엽게 말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애교의 여왕'이라는 별명은 그냥 붙은 게 아니었다.

◆삶은 35년 길이의 필름

-낸시랭하고 박혜령 중에 어느 게 본명이에요?

"둘 다 본명이에요. 박혜령은 한국 이름이고, '낸시랭'은 고등학교 때 필리핀 마닐라의 국제학교에 다니면서 새로 만든 이름이에요. 제가 미국에서 태어나서 이중국적을 갖고 있었는데 18세 때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서 서류상으로는 박혜령이라는 이름이 없어졌죠. 어릴 때부터 저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꿈이었는데 혜령이라는 이름은 외국인들이 발음하기에 너무 힘들고 경쟁에서 밀리더라고요. '낸시'는 어머니가 만들어 준 이름이고, '랭'은 수많은 성(姓)에서 기억하기 쉽고 여러 나라에서 공통되고 발음이나 서체, 디자인 등을 고려해서 선택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뭡니까?

"제가 꿈을 현실보다 더 입체적으로 꿔요. 컬러풀하고 너무나 선명하고. 작품을 하면서 영감을 받는 것 중의 하나가 꿈이에요. 일어나면 꿈꾼 내용을 노트에 써요. (꿈 중에서 가장 판타스틱했던 게 뭐냐고 물었다.) 하늘을 나는 꿈인데요. 우주 밖으로 나가서 너무나 푸른 지구를 봤는데 진짜 눈물이 막…. 이건 단어로 표현이 안 돼요. 꿈 말고도 순간순간 작품에 대한 영감을 받으면 확 와닿는 것은 메모하죠."

-'삶은 35년의 필름'이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20세 때부터 55세까지, 그 35년이 열정을 다해 꿈을 이룰 수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 이후에는 아무래도 뭔가를 이뤄내기 힘들지 않을까요. 55세 이후에는 관조하면서 살려고요. 죽을 때까지 아트는 계속 하겠죠. 55세 전에 저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어 있을 테니까. 또한 엄청난 부자가 돼 있을 테니까. 그 이후엔 많이 베풀면서 관조하고 작품 활동하면서 여행 다니며 살려고요."

◆웃음 뒤에 감춰진 그늘

-(그녀가 바나나를 갈아 만든 스무디를 주문했다.) 커피 잘 안 드시나봐요?

"예, 잘 안 마셔요. 음료를 마셔도 조금 더 몸에 좋은 것을 먹으려고 노력해요. 너무 바쁘니까 건강을 잘 챙길 수가 없잖아요. 하는 일이 굉장히 많아요. 지금도 전시가 3개 진행 중이고요. 부천 만화박물관, 삼청동 구마갤러리, 인사동 갤러리 또 7∼8월에 수원 시립미술관, 경남 도립미술관 전시도 잡혀있고. CTS 기독교TV와 아리랑TV, KBS의 '재미있는 TV미술관' MC도 맡고 있고 있어요."

-어머님 건강은 어떠세요? (그녀의 어머니는 17년째 암으로 투병 중인데 그녀는 아버지가 작고한 2005년 이후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재발을 해서 지금 항암치료 중이세요. 힘들어요. 여장부셨던 어머니였지만 현실이 너무 극적으로 변하니까 받아들이시질 못하는 것 같아요. 예전부터 우울증이 있었고, 정신과적인 치료가 필요했는데 항암치료 때문에 너무 힘드니까 치료시기를 미뤘거든요. 어머니 혼자 생각과 상상을 많이 하면서 망상을 하셔요. '모르게 통장을 따로 숨겨놨다' '자기를 갖다 버리려고 한다' '너를 이렇게 만든 게 내 덕인데 너는 이것밖에 돈을 못 버느냐' 그런 식으로. 그래서 제 영혼이 많이 손상되고 있어요. 그것도 나의 분신 같은 엄마와 나 사이에…."

-쌓인 스트레스 어떻게 푸세요?

"음주 가무로 풉니다. 하하하. 작품으로도 풀고요. 작품을 하면 스트레스 해소가 돼요. 제 안의 고통과 시련이 다양하게 작품으로 표현이 되고. (주량이?) 저는 많이 마셔요. 폭탄주만 마시고요. 폭탄주를 마시면 괜찮은 것 같아요. 그냥 스트레이트로 마시면 엄청 취해요. 막 토하고."

◆팝아트는 나의 달란트

-여러 미술 장르 중에 왜 하필 팝아트였어요?

"대학원 다닐 때 열었던 첫 개인전은 평면과 설치작업이었고 두 번째 개인전도 캔버스 작업이었어요. 그 때는 저의 시야가 정말 좁았어요. 그런데 '아,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느낀 거예요. 사실 비디오와 포토그라피 분야를 하고 싶었는데 당시 가세가 급격히 기울 때라 장비를 구입하기 힘들었어요. 그런 와중에 현대미술의 장르 중에 퍼포먼스라는 장르에 눈을 돌리게 됐죠. 이건 몸이 매체이기 때문에 돈이 안 드는구나. 그래서 선택한 거예요."

-'예술이 비키니처럼 가벼웠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논란도 있었죠?

"현대미술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팝아트가 가장 상업적이고 대중 친화적이고 가벼워요. 그동안 국내에도 팝아티스트가 있었지만 낸시랭이 등장하면서 팝아트가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됐잖아요. 국내에서 최초로 기업들과 비즈니스 파트너를 맺고 아트디렉터나 광고, 패션모델로 성공적인 결과를 냈고요. 제가 'I love dollars(나는 돈을 사랑해)'를 외칠 때 다들 욕은 했지만 모두가 원하는 거거든요. 5, 6년 전만 해도 미술을 하는 아티스트가 돈 얘기를 하면 '작품이 쓰레기다' '영혼이 썩었다' 그랬거든요. 하지만 저는 팝아티스트로서 제 분야에서 자유롭게 작품을 펼친 거죠."

-만약 남들보다 뚱뚱하거나 못생겼어도 몸으로 하는 퍼포먼스를 할 수 있었을까요?

"했겠죠. 1980년대 초에 이불 작가는 낙태를 주제로 나체 퍼포먼스를 해서 논란을 일으켰어요. 이불 작가가 굉장히 날씬하거나 예쁜 얼굴이 아니었지만 한 거죠. 또 국내외 많은 퍼포먼스 작가들이 나체로 퍼포먼스를 해왔어요. 다만 대중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거죠. 그리고 다들 저보고 벗었다고 하는데 저는 안 벗었거든요. 저는 패션을 입었어요. 빅토리아 시크릿 란제리나 비키니라는 패션을. 그런데 왜 제가 외설 논란이 되는 건지 궁금해요."

-혹시 성형한 곳 있어요?

"아뇨.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너는 절대 손을 대지 말아라' 그러셨어요. '비비안 리'처럼 예뻐질 것 같으면 '전신공사'를 해주겠는데 그렇게 해서 될 얼굴이 아니라는 거예요. 제가 좀 귀티가 나고 동안인데 그런 느낌을 살리라는 말씀이었죠."

◆진실의 열쇠는 시간

-연예인이냐, 아티스트냐 하는 말들도 합니다.

"저는 방송이나 콘셉트가 있는 작품 외에는 다 제 기분에 따라 입거나 치장을 해요. 연예인처럼 메이크업을 받거나 스타일리스트를 두는 것도 아니고요. 각자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시면 되는 거고."

-악플에 꽤 시달리지 않나요?

"반반이더라고요. 저는 극안티팬과 극열성팬 딱 흑백으로 갈려요. 사실 집안 문제로 너무 힘들어서 악플 정도는 상처에 기미도 안 와요. 어차피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게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다 나오게 되니까요."

-낸시랭이 명품중독자라는 말이 있던데요

"명품을 너무 사랑해요. 특히 루이비통을 사랑하고 샤넬, 크리스찬 디오르, 돌체앤가바나 이런 순으로 좋아해요. 명품의 가격이 비싼 건 바로 'Piece of art work'(예술 작품의 일부)이기 때문이에요. 각 명품 브랜드마다 자기네가 추구하는 정신이 있어요. 오랜 세월 동안 지켜온. 그 때문에 가격이 그렇게 비싼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값비싼 명품들이 그냥 자기 과시욕으로 둔갑하잖아요. 그런 잘못된 마음이 문제죠."

◆Just be yourself

-낸시랭씨는 예술적으로 여러 시도를 하는데 혹시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나요?

"'Just be yourself, dream and go for it.'(네 자신이 되라. 꿈을 향해 나가라) 이건 제 작품 속에 항상 있는 것이고 변하지 않아요. 우리는 너무나 독특하고 소중한 존재잖아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자에 맞는 '달란트'를 주셨어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 가장 몰두할 수 있는 것. 이게 '달란트'예요. 누구나 자신만의 '달란트'를 최대한 끄집어내면서 살아가는 게 가장 큰 삶의 목적인 것 같아요." (달란트는 고대 질량과 화폐의 단위이다. 기독교에서는 마태오 복음서의 달란트 비유 때문에 '재능'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앞으로 계획은?

"제가 평면 작품에 애착이 항상 많았어요. 제 아트의 중심도 평면이었고요. 그동안 퍼포먼스나 다른 일도 많이 해왔지만 앞으로 몇년간은 평면 작업에 주력하고 싶어요. 남은 미련 중에 하나가 뉴욕 맨해튼에서 공부를 하는 건데요. 그래서 대학원을 다니거나 맨해튼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싶어요. 공부는 시기가 다 있잖아요.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요."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는 연애와 결혼를 두고 그녀와 한참 수다를 떤 뒤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낸시랭은 스스로를 '큐티, 섹시, 키티, 낸시'라며 한껏 소개하지만, 기자가 보기엔 '솔직, 깜찍, 발칙, 낸시'도 꽤 잘 들어맞는 표현같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낸시랭은?

1979년 미국에서 태어나 3세때 한국으로 왔다. 필리핀 마닐라의 국제학교를 다녔고 홍익대 미술대 서양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받지 않고 참석해 란제리를 입고 바이올린을 켜는 팝아트 퍼포먼스를 펼쳐 유명세를 탔다. 팝아티스트로서 쌈지, 대구 동아백화점 수성점 등 기업체 아트디렉터를 맡았고, 광고·패션모델, 방송 진행자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으로 건담의 몸에 사람 얼굴, 인체 장기 그림 등을 조합한 '터부 요기니' 연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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