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0일 오후 1시쯤 대구 중구의 한 병원 화장실. 링거를 꼽고 환자복을 입은 한 30대 남성이 종이 커피잔을 든 채 유유히 화장실로 들어왔다. 그는 볼일은 보지 않은 채 담배부터 꺼내 물었다. 좁은 화장실안에는 금세 연기로 가득찼다. 기자가 '금연 건물아니냐'고 묻자 그는 "병원 직원들도 가끔 이곳에서 담배를 피운다. 상관없다"고 했다. 화장실 한 켠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가득했다.
#2. 같은날 오후 3시쯤 대구의 한 대학교 단과대. 삼삼오오 강의실을 빠져나오던 학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계단 층계에 모여 담배에 불을 붙였다. 뿌연 연기는 실내 곳곳으로 번졌다. 계단 벽면은 담배를 비벼 끈 흔적으로 지저분했다. 한 여대생은 "건물전체가 금연구역인데 강의가 끝나면 남학생들이 으레 담배를 피운다. 제지하는 사람도 없고 빨리 지나가는 게 상책"이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학교·병원등 절대 흡연 금지 구역이나 간접 흡연 피해가 높은 회사, 관공서 등 공공장소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얌체 흡연족'들 때문에 금연의 날(5월31일)의 의미를 무색케 한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해 전국 금연 시설을 8만여곳에서 33만여곳으로 늘리는 등 금연정책을 강화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학교와 의료기관은 2006년 7월부터 절대 금연구역으로 지정됐고, 연면적 1천㎡이상 사무용 건물 및 공장, 관공서 등은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9백여평(2천970㎡) 이상의 사무용 건물이나 6백여평(1천980㎡) 이상 복합건축물의 사무실, 회의장, 강당, 로비 ▷대학교 강의실, 휴게실 ▷전철 지상 승강장 ▷목욕탕 탈의실 ▷열차 통로 ▷공중 이용시설의 복도나 화장실 등이 포함된다. 이곳에서 담배를 피울 경우 최고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부과 사례는 거의 없다.
금연구역에서의 흡연은 공공연하게 이뤄지는게 현실이다. 30일 오후 4시쯤 찾은 북구의 한 관공서 화장실에는 막 누군가 피우고 간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붉은 색으로 쓰인 '금연'이라는 푯말이 무색했다. 공무원 김모(29·여)씨는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면 연기가 복도를 타고 사무실에까지 들어 온다"며 "지키지도 못할 금연구역을 만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되물었다. 회사원 이모(32)씨는 "심지어 KTX열차 통로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까지 봤다"며 "금연 구역에 대한 경각심이 전혀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이영자 기획실장은 " 정부가 단속과 계도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무엇보다 건물안에 '흡연실'을 두는 것은 간접 흡연을 합법화 하는 제도인 만큼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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