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체험이다. 새로운 자연풍경, 낯선 언어와 풍습, 고색창연한 삶터와 문화재 등을 보고 느끼며 경험치를 높이는 활동이다. 여행은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준다. 그래서 어린이나 청소년시절의 여행은 그 자체가 소중한 추억이며, 미래를 풍요롭게 한다.
'곽재구의 포구기행'은 기행산문이다. 스쳐지나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나그네의 입장에서 글을 썼다. 나그네는 좀 더 여유롭고 사색적인 냄새가 난다. '포구기행'은 우리나라의 작은 포구 마을, 하찮아 보이고 보잘 것 없을 것 같은 그런 포구에서 따개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과 꿈을 시적인 문체로 그려낸 기행문집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포구가 없는 곳이 없으며, 항구와 부두까지 널려있다. 그런데 그깟 포구를 놓고 뭐 그렇게 할말이 많을까 싶었다. 고기잡이 작은 통통배 몇 척과 나룻배 몇 척 뿐인 그곳에 대해. 하지만 작가는 그곳에서 잃어버린 시간의 껍데기를 줍고, 갈매기처럼 끼룩대며 어부들의 소박한 꿈을 들추어냈다.
외로움이 물밀듯이 밀려 올 때 찾은 동해안 맨 끝 구룡포에서 작가는 '외롭다는 것은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 있어 사랑이 찾아올 때보다 더 귀한 시간'이라고 얘기한다. 어청도의 한 늙은 어부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노동의 신성함을 생각하게 한다. "노인은 고기를 잡지 않았다. 달빛들이 스러질 무렵이면 노인은 그물을 걷고 자신의 오두막집으로 돌아갔다. 이익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파는 노동은 평온할 수 없다. 하루의 노동이 자신의 하루 생계의 몫을 넘어서고 더더욱 그것이 다른 사람의 몫을 침범하는 경우라면 그 노동은 신성함을 잃는다." 그 어떤 철학가나 사상가보다 깊고 넓다.
또 한 사람의 멋진 얘기가 나온다. 회진장터 한 귀에서 2천원짜리 팥죽을 쑤는 아줌마는 천진한 이야기와 순박한 맛으로 유명하다. 작가는 도무지 이익이라고 남을 것 같지 않은 2천원짜리 팥죽을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에 앉아 배달받아 먹는 얘기를 듣고 부아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인간적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서른 명이 식사를 하고 횟집에서 두 명의 식사비도 안 되는 돈을 건네고…."
작가의 갯벌에 대한 애정과 느낌은 남다르다. 그는 서해안에서 가장 보기 좋은 것이 갯벌이라고 한다. "특히 삶이 난해하고 핍진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코끝이 얼얼해지는 갯내음 속에서 얼마쯤 서성이다 보면 저잣거리에 두고 온 진흙투성이의 세상일들은 문득 지워지기 마련이다."
여행은 자기 성찰의 기회이기도 하다. 제주 바다에서 그는 "꿈이나 그리움이 어디 있는지 아무런 상관도 없이 그저 벌레처럼 돈 모으는 일에만 집착하지는 않았는지요…."
그가 직접 찍은 사진들, 여행을 하며 작가가 떠올리는 여러 시인들의 작품을 감상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