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6·3사태

1964년 6월3일,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절정을 이룬다. 국회의사당에서 청와대에 이르는 길은 수만명의 학생들과 경찰들로 뒤덮였다. 한일간 국교수립을 서둘렀던 것이 화근. 권좌에 오른 박정희 대통령이 첫 대규모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사태가 4·19를 방불케 하자 당시 박 대통령은 마침내 오후 8시를 기점으로 서울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4개 사단 병력을 투입해 시위를 무력 진압했다. 역사에 6·3사태로 기록된 대대적인 시위진압 사건.

박 정부는 같은 해 7월 29일 계엄을 해제할 때까지 모든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대학 휴교와 언론·출판의 사전검열, 영장 없는 압수·체포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 조치로 시위의 주동인물과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학생과 정치인, 언론인 등 1천120명이 검거되고 348명이 구속됐다. 한일국교 수립을 추진한 박 정권은 6·3사태가 일어난 지 1년 만인 1965년 6월 22일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조인한다.

이후 시위자들이 모여 '6·3 동지회'를 결성했다. 당시 시위 주동자었던 이명박 대통령도 이모임의 회장을 역임했다.

▶1786년 추사 김정희 출생 ▶1959년 싱가포르, 영연방 독립

정보관리부 이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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