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李대통령 취임 100일] 평가와 과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3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국민 2명 중 1명의 지지를 얻어 '선진 한국 창조'를 외치며 힘차게 출범한 '이명박호'에 국민들은 경제 발전과 국민 통합 등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취임 90일여 만에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국민에게 한차례 사과했고, 100일 만에 장관 및 청와대 수석 경질 등 국정 쇄신책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국정 평가 낙제점=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 긍정적 평가는 평균 21%선에 그쳤다. 이는 대선에서 10명 중 5명에 달했던 지지자 중 3명이 지지를 철회했다는 것으로 이 대통령의 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도덕성이 없는 부자들이 서민과 지방을 외면하고 가진 자, 대기업, 수도권 등 강자에 유리한 정책을 남발한 탓이다. 여기에다 '경제만은 살리겠다'던 공언과는 달리 기름값, 원자재값, 환율 상승 등에 대한 신속하고 적절한 처방을 내놓지 못하자 국민들이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마저 접은 것이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는 전문가들의 풀이다.

지지율 추락의 시작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부터 시작됐다. 영어 몰입식 교육 논란으로 먼저 학부모들의 마음을 잃었다. 한나라당에서 인수위가 정부의 몫인 정책을 남발한다는 비판을 제기하자 인수위는 '식물'이 됐다. 그 여파로 인수위에서 검토한 각종 정책은 청와대와 정부에 전달되지 않고 그냥 사장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처럼 준비 작업이 무용지물이 됐으니 실용정부가 100일 동안 우왕좌왕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평가다.

10년 만에 집권한 우파 정권은 또 좌파를 철저히 배제, 조각시 참여정부의 인력을 활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인사 검증 실패로 나타났다.

한미 쇠고기 협상은 결정타였다. 이 대통령의 방미 중에 협상이 타결돼 '방미 선물'이란 의구심이 있던 터에 "안 사먹으면 된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촛불문화제'에 대한 청와대의 상황 판단도 잘못됐다. 청와대는 쇠고기 협상에 따라 직접적 피해를 입는 낙농업자 대책만 세우면 된다고 안이하게 판단한 것.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정부 관계자에게 '농민'이 아니라 '국민 건강'으로 싸울 것이란 경고를 했으나 청와대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한다.

◆사면초가(四面楚歌)=실용정부가 국민 반응을 무시한 채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 비판 세력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론 분석 전문가들에 따르면 영어 몰입 교육, 0교시 수업, 학원 선생의 방과후 교육으로 교육계와 학부모, 학생들을 잠재적 적으로 만들었다. 공직자 재산 파동과 물가고 및 생활고로 서민들이 지지를 철회했다. 혁신도시 재검토, 선벨트(Sun Belt) 구상 발표와 쇠고기 협상은 지방을 자극했다. 정부 부처를 통폐합하고 공기업 구조 조정을 추진하면서 전통적 지지층인 공무원들의 이반 현상도 나타났다. 따지고 보면 이 대통령 지지 세력이 어느 곳에도 없도록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꼴이 됐다.

언론 환경도 녹록지 않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이명박 정부 지지율 하락 원인 중 하나가 정연주 KBS사장 때문"이라고 한 발언은 이를 반영한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들은 정부의 방송통신 융합 정책에 위기감을 느껴 현 정부에 대한 비판 입장으로 돌아선 지 오래란 것이 언론학자들의 지적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진보지들의 비판 강도도 높다. 일부 보수 신문만 정부에 우호적이다.

◆대통령 혼자 일한다='불도저' 이미지로 굳어진 이 대통령은 100일 동안 그야말로 밤잠을 설치면서 동분서주했다. 미국·일본·중국에도 다녀왔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눈에 띄는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대통령만 바쁜 이유는 '구조적'이라는 분석이다. 한승수 국무총리의 경우 처음부터 제 역할을 할 수 없도록 자리매김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자원외교를 전담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총리의 역할은 내각을 총괄하는 집안의 어머니격이다. 외교는 국가의 수반으로 아버지격인 대통령 몫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이 뒤바뀐 셈이다. 대통령이 각 부처의 일까지 직접 챙기니 공무원들이 팔짱을 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에 대한 온갖 비판이 바깥에서 제기됐으나 이를 대통령에게 그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권력을 향한 충성 경쟁을 하느라 청와대 바깥 세상에 대한 눈과 귀가 어두웠던 탓일 수도 있다.

◆대통령 변화하나=100일을 즈음한 현재 국민들의 관심은 '과연 대통령이 변화할 것인가'에 있다. 신념이 강한 이 대통령은 절대 변화하지 않을 것이란 게 많은 국민들의 생각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그러나 "대통령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변화한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변해야 할 방향은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와 각 부처, 산하기관 모두가 일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18대 대통령과 호흡을 함께할 18대 국회의 거대 여당이 막 출범한만큼 당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당이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 소화하는 기능을 담당해야 대통령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그렇게 하려면 고위당정회의·실무당정회의에서 국민의 기대를 담은 정책을 신속히 내놓고 일사불란하게 집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첩경이다.

청와대 참모진들은 '서류를 만드는 일'에 파묻히거나 권력을 행사하는 '재미'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청와대 안에 있지 말고 민심을 읽으러 전국을 돌아다니라는 것이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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