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00자 읽기]강물을 만지다

정혜옥 지음/선우미디어 펴냄

정혜옥은 세월 속에 눈 질끈 감고 모른 척해도 그만일 세상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파괴력 강한 세월이 미처 손을 쓰기 전에 갈무리해 두려 애쓰는 모습이다.

'길에서 돈을 주웠다. 버스 정류장 옆, 전봇대 밑에 동전 두 개가 떨어져 있었다. 오백 원짜리와 백 원짜리가 각각 한 개였다. 동전 두 푼을 손에 쥔 채 버스에 올랐다. 그 때 나는 우리 집 채소밭에 뿌릴 씨앗을 사러 서문시장에 가는 길이었다. 손에는 여전히 동전이 쥐어져 있었다. 포켓에 집어넣기엔 왠지 꺼림칙하였다. 횡재를 한 기분보다는 무언가 남의 것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아욱국' 중에서-

지은이는 주운 동전을 차마 호주머니에 집어넣지 못한다. 호주머니에 집어넣는 순간, 아마 '남의 돈인 동전을 주웠던 기억이나 행위' 자체를 지우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돈이 처음부터 자기 돈인 양 행세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동전을 손에 쥐고 있었다. 목적지인 서문시장에 도착해서 배추씨를 사고, 상추씨를 사고, 쑥갓 씨를 사고, 마지막으로 아욱 씨를 살 때 길에서 주운 동전을 내밀었다. 주운 돈을 호주머니에 넣지 못하는 마음, 그 돈을 차마 쓸 수 없어 내내 미적거리는 마음이 정혜옥이 수필을 쓰는 이유이며, 그가 쓴 수필의 깊은 맛일 것이다. 175쪽, 9천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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