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신뢰 되찾기, 행동으로 보일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10대 중고생 중심의 몇백 명에서 시작된 모임이 이제는 숫자도 몇만 명으로 늘어나고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여성 그리고 직장인들로 참여주체도 바뀌고 있다. 단순한 촛불문화제에서 거리시위로 확산되고 있으며 요구내용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에서 공기업 민영화 반대, 대운하 반대 등 정치적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다양한 분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신뢰의 상실이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정부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일했지만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소홀히 하고 내 갈 길을 고집하였다. 이것이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일상적인 경제생활을 포함하여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행위는 상호 간의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가 매일 안심하고 회사에 출근하는 것은 남들도 나와 같이 매일 출근하여 같이 일할 것이라고 믿기에 가능하다. 출근할 때마다 동료와 부하직원 또는 상사가 출근할지 여부를 걱정해야 한다면 어떻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주부가 쇠고기를 살 때마다 미국산인지 한우인지 혹시 광우병이 염려되는 부위인지 아닌지 원산지 표시제는 믿을 수 있는지 등을 걱정해야 한다면 쇠고기를 어떻게 사먹을 수 있을까?

우리는 주위에서 신뢰가 무너진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니 많은 사람들이 많은 비용이 드는 사교육에 매달린다.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게 되니 사람들은 기러기 가족이 되기를 감수하면서 어린 자식을 외국으로 조기유학시킨다. 우리나라뿐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계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서로 믿지 못하니 자금순환이 안 되고 유동성이 부족해지며 금리가 높아져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돈이 있는 금융기관들은 대출을 꺼리고 돈이 부족한 금융기관은 부도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필자는 신용카드 회원 모집과 관련하여 한편에서는 신용카드업계와 다른 편에서는 감독당국, 언론 및 기타 일반인의 사이에 커다란 시각차가 있음을 볼 수 있었다. 2002년까지 내수 진작을 위한 정부의 신용카드 사용 장려 정책과 카드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맞물려서 신용카드산업은 엄청난 양적 팽창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길거리 모집, 카드 돌려 막기 등이 성행하였다. 이후 카드사의 연체율이 급등하고 신용불량자가 크게 늘어나는 가운데 카드사의 경영이 크게 어려워지면서 2003년 카드대란을 맞이하게 된다.

신용카드대란의 원인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길거리 모집을 통해 무자격자에 대하여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남발한 것이 주원인이라는 인식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다. 따라서 길거리 모집 하면 바로 무자격자에 대한 카드 남발을 연상한다. 한편 신용카드업계 사람들은 이제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신용카드의 모집과 심사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종전에는 심사과정이 허술하고 그 방법이 서툴러서 대량 모집된 사람들 가운데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제대로 선별해 내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고 카드 발급 대상을 선별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었다. 이제는 길거리 모집을 허용해도 무자격자에 대한 카드 발급 등의 문제가 없고 오히려 고객에 대한 편의성이 증대된다고 주장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집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든 심사만 제대로 하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는 맞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말을 잘 믿지 않는다. 심사를 잘할 능력도 있고 잘할 의사도 갖고 있다고 신용카드업계에서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은 잘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심사를 잘할 능력이 있다는 말도 잘 믿기지 않지만 심사를 잘할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심사를 잘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길거리 모집이 허용되면 바로 무자격자에 대한 카드남발로 이어질 것이고 결국 신용불량자 양산을 초래할 것이므로 카드회원 길거리 모집은 금지되어야 한다.

한번 상실한 신뢰를 회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논리적으로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말만으로는 한번 상실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믿음이 가는 행동을 꾸준히 상대방이 믿어줄 때까지 반복하여 행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많은 노력과 비용과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신뢰의 상실로 인해 고비용 구조가 되어 있는 분야가 여기저기 있다. 진정한 선진경제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분야를 찾아내어 신뢰에 바탕을 둔 저비용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동참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이강세 여신금융협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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