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양반 할아버지'가 떴다. 늘 보던 할아버지가 아니다. 갓을 쓰고 흰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다. 이벤트 복장이 아니라 진짜 수염을 휘날리며 '양반운전'을 전파하는 진짜 옛날 할아버지 모습이다.
대구 중대동에 사는 최정해(62)씨는 늘 이런 옷차림으로 다닌다. 양복은 아예 없다. 한복 5벌로 4년째 이렇게 생활하고 있다. 범상치 않은 옷차림에다 그의 가슴에 커다랗게 달린 '양반운전'이 더욱 눈길을 끈다.
정년퇴직을 한 그가 '양반운전'이란 마크를 가슴에 달고 새로운 삶의 운전대를 잡은 이유는 케케묵은 옛날 양반행세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양반'은 예(禮)와 의(義)가 있는 사람이다. 즉 양반운전이란 올바로 사는(운전) 것이다. 말하자면 '제대로 살자'는 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돈이 많아도, 많이 배웠어도 언행이 바르지 못하면 간신에 불과하다. 그래서 삶을 올바로 사는 양반이 되자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양반운전이다.
최씨는 양반운전 실천을 위해 자신부터 먼저 거리로 나섰다. 스스로 모범이 돼보자는 생각에서다. 매일 아침 그는 등굣길 교통정리 봉사를 한다. 교통정리를 하며 공중예의를 가르친다. 담배 피우는 학생을 만나면 서슴없이 예를 갖춰 타이른다. 반응이 좋다. 요즘 10대들이 무섭다(?)고 하지만 대드는 학생은 아직 한명도 없다. 최씨는 "갓 쓰고 한복 입은 덕"이라며 웃는다.
은퇴하기 전 그는 경북교통 버스 운전기사였다. 15년간 운전했다. 그러면서 무수한 사람들을 만났다. 단조롭지만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난폭' '무질서'라는 단어였다. 매일 보고 듣는 것이 교통사고에다 무법천지였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면 할수록 그의 고민은 깊어졌다. 남들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최씨에게는 직장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중대한 문제였다. 우습게도 그는 해답을 꿈속에서 찾았다. '양반운전'이란 네글자가 번개처럼 스쳤다. 한밤중에 벌떡 깨어난 그는 무릎을 쳤다. 이튿날 단숨에 이 양반운전 네글자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4년 전의 일이었다.
그날부터 그는 줄곧 한복을 입었다. 신발, 바지저고리, 조끼, 도포, 탕건, 갓 이렇게 한벌 장만하는 데 10만원 정도 들었다. 한복은 서문시장에서만 구입했다.
얼마 전부터 최씨는 칭찬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교양 있고 예의 바르고 매너 있는 양반학생은 나라의 꽃이요, 향기요, 선구자입니다… 의로운 언행으로 마음을 다지고 노력하면 큰 꿈을 이루고 훌륭한 위인이 됩니다…." 칭찬편지의 한 구절이다.
그는 어른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는 아이를 보면 이 편지를 선물한다. 편지와 함께 디지털카메라로 기념사진도 촬영해 준다. 사진은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http://dqdw.wo.to)에 올려 놓았다. 원하면 기념사진을 인화해 주기도 한다. 벌써 100여명의 아이들이 칭찬편지를 받고 보너스로 기념사진을 찾아갔다.
그는 양반운전을 시작하던 2004년 11월 블로그를 개설했다. 그의 블로그는 젊은이 못지 않은 재미에다 내용도 알차다. 그는 사진도 잘 찍고 캠코더도 잘 다룬다. 지난해엔 정보기기 운용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인터넷 설치 운용도 수준급이어서 하루 평균 100~200여명이 그의 블로그에서 놀다 간다. 지금까지 4만여명이 다녀갔다.
그는 91세의 부친과 86세의 모친을 모시고 있다. 요즘은 모친이 치매증세가 있어 걱정이다. 그래서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고 설거지랑 빨래 수발도 직접 한다. 그의 '양반운전'은 집에서도 계속된다.
사진·글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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