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감 후] '백골단'의 추억

전경, 살수차, 군홧발…. 요즘 촛불집회를 지켜보면서 역사의 엄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세상은 돌고 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시곗바늘을 20여년 전으로 돌려봅니다. 1980년대는 참으로 다이내믹한 시절이었죠. 거리에는 매캐한 최루탄 연기 속에 깨진 보도블록과 병 조각이 널려 있었고 매일 수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기자도 20대의 '피끓는' 청년 학도로서 시위대를 꽤나 쫓아다녔습니다. 나 자신의 내면에 어떻게 그런 열정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아스라하지만, 당시에는 민족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라고 믿었습니다. 어린 후배들의 손을 잡고 '지랄탄'과 전경들의 곤봉을 피해가며 거리를 뛰어다녔죠.

그 중에서도 오토바이 헬멧에 청재킷을 입은 '백골단'이 가장 무서웠습니다. 백골단이란 명칭은 회색 헬멧을 쓴 데서 유래됐는데 실제로는 특수기동대, 사복기동대라고 불리는 무술경관이었죠.(80년대 초반 만들어져 97년에 없어짐)

그들은 전경대 옆에 다소 껄렁한 자세로 서있다가 시위가 절정에 이를 때면 날듯이 뛰어들며 학생들을 붙잡아가곤 했습니다. 누군가 "백골단이다"라고 외치면 시위대가 바짝 움츠러들곤 했습니다. 그들이 돌입하면 시위대열이 무너지고 웬만한 열성 데모꾼이 아니면 달아나기에 바빴죠. 그만큼 공포의 대상이었고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았죠.

90년대 초반 초년 기자 시절 경찰서에 출입하면서 공포의 '백골단' 출신들과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무술 고단자들인데다 터프한 성격을 가진 이들이 형사계에 잔뜩 포진하고 있었죠. 상당수는 '신참' 형사들이었는데 위계서열이 엄격한 형사계에서 고참들의 눈치를 보며 심부름을 하곤 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얼굴을 마주하는데다 기자와 비슷한 또래여서 그들과 곧잘 어울렸습니다. 이 술집 저 술집 옮겨다니며 술도 많이 마셨습니다. 그들은 '풋내기' 형사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고 경찰의 부조리에 열을 올리곤 했습니다. 기자는 뭔가 기사거리라도 건질 수 있을까 해서 눈을 반짝거리며 그 얘기에 귀 기울이곤 했습니다. 취재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들과 어울리는 자리는 무척 즐거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자는 출입처를 옮겼고 나중엔 그들을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문에서 박 기자 이름 봤다"며 가끔씩 전화를 걸어오거나 안부를 물어왔습니다. 요즘도 예전의 추억을 잊지 않고 연락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기자는 순수하지 못한 나 자신의 모습에 얼마간의 부끄러움을 느끼곤 합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모습을 가진, 우리의 정 많은 이웃이었습니다. 단지 그 옛날에 서로 속해 있던 자리가 조금 달랐을 뿐이죠.

요즘 촛불집회 참석자와 전경들이 서로 대치하고 욕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군홧발에 폭행당한 여학생이 뉴스에 오르내립니다. 시위대와 전경은 적이 아닙니다. 미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릅니다. 기자처럼 말이죠. 아무쪼록 주말 집회는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평화롭게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박병선 사회1부장 lala@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