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군대서 보낸 동생의 첫 편지에 눈물

1992년 최수종 김희애가 귀남이 후남이로 나왔던 MBC 드라마 '아들과 딸'을 엄마가 열심히 보셨는데 나도 그 옆에서 꼭 챙겨서 봤다. 왜냐하면 그 드라마가 꼭 내 얘기 같았기 때문이다. 6녀 1남의 우리 집에서 두살 아래의 동생은 귀남이였고 여섯째 딸인 나는 후남이였다. 정말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모든 사랑은 내 남동생이 받았었고 나는 항상 뒤였다. 어릴 때는 엄마의 모든 행동들이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그럴수록 남동생과 나는 정말 앙숙이 되어가고 있었다. 커 갈수록 정말 많이 싸웠고 엄마 몰래 많이 괴롭혔다.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20살 때 아빠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고, 눈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걸 그때 느낄 수 있었다. 병원으로 간 나는 교복을 입고 하얗게 얼굴이 질려 있고 입술을 꽉 깨문 채 엄마를 꼭 붙잡고 서있는 동생을 볼 수 있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눈물 한 번 보이지 않았고 묵묵히 누나들을 뒤에서 지켜주었던 동생은 마지막 하관식 때 참아왔던 울분을 토해내듯 그때야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알 것 같았다. 하나뿐인 아들이라는 내 동생의 어깨의 짐을 말이다.

3년 후 입영하던 날, 나는 학교도 빼먹은 채 동생을 배웅하러 갔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사제물건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입소한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전날 밤 우리 가족들이 한마디씩 쓴 편지와 초코파이 사먹으라고 몇만 원을 손에 꼭 쥐여주며 "편지는 읽고 꼭 버려. 돈은 들키지마" 하며 행여 선임병한데 흠이라도 잡힐까봐 전전긍긍하며 돌아왔다.

얼마 후 남동생의 첫 번째 편지가 왔고 편지를 뜯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동생은 입영 날 준 꼬깃꼬깃 접힌 자국이 선명한 그 편지 뒷면에다가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괜찮아요. 누나들 적어 준 편지 몇 번씩 읽으면서 힘을 냈고 군 생활 건강하게 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누구나 다 가는 군이지만 남동생의 군 입대는 그 당시 우리 가족한테는 큰일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편리한 전화가 있었지만 가족들이 사랑스런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보낼 때, 그 편지를 읽고 또다시 꼬박꼬박 답장을 써보내는 마음을 어디에다 비유할 수 있을까. 새삼스레 그 편지가 다시 읽고 싶어진다.

조영은(대구시 달서구 송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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