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운명은 개척하는 것…애니메이션 '쿵푸 팬더'

'운명은 없다'(No Fate!).

영화 '터미네이터'의 굵은 주제다. 이제 쿵푸 영웅 포에게 적용될 대사다.

조상대대로 국수를 파는 국숫집 아들 포(잭 블랙). 이제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을 나이가 됐다. 그러나 그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도포를 휘날리며 모래 바람 속에서 홀연히 나타나 악당을 물리치는 쿵푸 전사, 오늘도 그 꿈을 꾼다.

그러나 당치않은 일. 쿵푸의 'ㅋ'자도 모를 뿐 아니라 키 120cm에 몸무게 160kg의 단지 몸매. 계단 하나도 제대로 오를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은 바닥, 무예는 전무. 그는 대회라도 볼 요량으로 경기장에 난입한다.

마침 대사부가 '용의 전사'를 지목하는 순간 그 앞에 나타나 버린다. 대사부는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는 말로 뚱보 팬더를 '용의 전사'로 지목한다. '용의 전사'가 되기 위해 무예를 닦아온 '무적의 5인방'은 허탈해하고, 사부인 시푸(더스틴 호프먼)도 대사부 앞에서 철회를 요구하지만, 대사부는 "믿어라"라는 말만 남긴다.

사부는 미련하고 먹는 것에 집착하는 팬더에게 강도 높은 수련을 시작한다. 한편 지하 감옥에 갇힌 타이렁이 탈옥한다. 사부의 수제자로 한때 '용의 전사' 1순위였으나, 타고난 악을 주체하지 못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인물이다. 무적의 5인방과 사부마저 차례로 격파한 타이렁은 잠재된 무예를 일깨운 포와 맞대결을 펼친다.

영웅의 탄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출생의 비밀도 석연찮지만, 그는 끝내 운명을 거부하고 무예 비법이 적힌 비서(秘書)를 얻고, 무술을 연마해 영웅으로 등극한다.

'슈렉'으로 재미를 본 드림웍스는 또한번 안티 히어로에 도전한다.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는 전형적인 강호의 영웅기다. 강호의 영웅이 비장하고, 우수에 젖은 영웅이라면 '쿵푸 팬더'는 소시민이고, 소박하고 유머러스하다는 것이 다르다.

드림웍스는 중국 무협지에 할리우드적인 액션, 애니메이션의 교훈까지 섞어 완벽한 삼박자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냈다.

서서히 다가오는 악, 이를 막을 힘은 충전되지 않은 가운데 술렁이는 위기감은 '용문객잔'을 닮았고, 강한 악에 맞서는 약한 주인공에게서는 게리 쿠퍼의 서부영화 '하이눈'을 연상시킨다. '우연히 이뤄진 것은 없다'를 비롯한 대사부의 말에서는 동양의 선(禪) 사상이 엿보이고, 액션은 전형적인 할리우드식이다.

북소리와 기합, 공기를 가르는 권법의 음향들이 고전적인 쿵푸 영화를 느끼게 한다. 격투기에 등장하는 주요 등장인물도 원숭이와 뱀, 사마귀, 호랑이 등 사권(蛇拳), 당랑권법, 호권 등 권법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표현했고, 만두를 빼앗기 위해 젓가락으로 싸우는 모습이나 무술대회 모습도 '취권' 등 쿵푸영화에서 많이 본 장면들이다.

특히 다양한 형태를 가진 등장인물의 묘사가 압권이다. 육중한 몸매로 쿵푸 동작을 펴는 팬더의 출렁이는 살과 애교스런 표정은 자지러들 정도다. 사부의 표정에서 심란한 마음까지 읽히는데, 애니메이션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타이렁이 수천 발의 화살을 피하며 지하에서 솟아오르는 장면과 '무적의 5인방'과 고공의 그네 다리에서 벌이는 대결 장면 등은 박진감이 넘친다. 그래픽 솜씨가 혀를 내두르게 한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목소리 출연도 잘 맞아떨어진다. '킹콩'의 잭 블랙은 포와 비슷한 체형과 이미지를 가진 배우다. 포가 계단을 오르면서 숨이 차 헐떡이거나, 그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은 그의 실제와 흡사하다.

근엄한 사부 시푸는 더스틴 호프먼이 맡았다. '무적의 5인방' 중 호권의 타이그리스는 안젤리나 졸리가, 우아한 사권의 바이퍼는 루시 리우가 맡았고, 화려한 원숭이권의 몽키는 성룡이 연기했다.

특히'우연은 없다' '운명을 이겨내라' '자신을 믿어라' 등 교훈이 쿵푸의 액션과 잘 맞아 떨어진다. 영웅적 서사와 시트콤적인 유머, 몸개그 등 풍성한 재미를 주는 애니메이션이다.

뛰어난 포장술과 현란한 기교의 할리우드의 애니메이터, 그들은 이미 달인의 경지에 오른 듯하다. 94분. 전체관람가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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