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뉴욕에서 열린 육상대회 100m 경주에서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가 9초 72의 신기록을 세웠다. 그날 나라마다 시민들이 주목한 '지역적' 사건들이 있었겠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주목한 '범지구적' 뉴스는 그것이었을 터이다.
우리가 두 번 생각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지만, 실은 이런 사정은 역설적이다. 그렇게 빨리 달리는 일은 실용적 가치가 없다. 지금부터 20년 전 칼 루이스가 9초 92의 신기록을 세웠는데, 그 동안에 기록이 0.2초 빨라진 것이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은 전혀 없다. 하긴 이것은 모든 운동들에 해당되는 얘기다. 축구공이나 골프공을 잘 다루는 재주는 실용적 가치가 전혀 없다.
그래도 우리는 운동 선수들의 날렵한 모습에 열광한다. 마이클 조던이나 박지성은 실용적 가치가 전혀 없는 일들을 잘 하는 덕분에 부와 명성을 누린다. 생각해 볼수록, 이상해지는 일이다.
더욱 이상한 것은, 사람의 몸이 낡을수록, 그것의 가치가 커진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근육의 힘은 오래 전부터 가축과 기계의 힘으로 대치되어 왔다. 이제 근육의 힘은 생존이나 성공에서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그러나 운동 선수들의 몸값은 가파르게 치솟는다.
이런 현상의 밑에는 우리가 건강하고 날렵하고 아름다운 몸을 바란다는 사실이 있다. 우리는 그런 몸을 갖기를 간절히 바라고 유난히 바람직한 몸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큰 즐거움을 맛본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에 대한 욕망은 본질적으로 성적 매력의 추구다. 건강하고 날렵하고 아름다운 몸은 좋은 유전자들을 지닌 젊은이를 뜻한다. 그런 젊은이가 좋은 배우자이므로, 사람은 그런 몸을 지닌 이성을 찾도록 진화했다. 이른바 '성 선택(sexual selection)'이다. 우리가 화장하고 염색하며 성형수술까지 하는 것은 바로 이성에게 매력적인 배우자로 보이려는 욕망에서 나왔다.
이런 욕망은 문화의 모습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문명이 원숙해지면, 사람들이 젊음을 추구할 여유가 생기고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문화가 나온다. 발전된 사회들에선 대중문화가 대체로 10대에 의해 다듬어진다.
아쉽게도, 몸에 대한 집착은 지성에 대한 경시를 낳았다. 몸을 가꾸는 일과 지적 성취는 양립하기 어렵다. 지적 성취가 성적 매력을 크게 늘리지도 않는다. 자연히, 지적 성취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보상은 줄어든다. 노벨상을 받은 학자들도 자기 분야 밖에선 '15분 동안의 명성'을 누릴 따름이다.
성적 매력의 추구는 우리를 어디로 이끌까? 물론 누구도 확실한 전망을 내놓을 수는 없다.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몸을 근본적 수준에서 다듬을 수 있는 시절이 다가오므로, 예측은 정말로 어렵다. 분명한 것은 성적 매력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본능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운동 경기에 열광하는 우리 마음이 성 선택에 의해 다듬어졌다는 성찰은 운동 경기의 즐거움을 덜지는 않을 것이다. 실은 운동 경기를 즐기는 일에 또 하나의 차원을 더할 것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의 본질을 아는 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을 줄이지 않고 오히려 자식을 보다 현명하게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것처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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