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버스 운전기사인 정모(44)씨는 한달 전부터 경유 대신 보일러 등유를 차량에 넣고 있다. 보일러 등유를 쓰면 차 엔진이 상한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한달에 150만원 이상 나오던 연료비가 보일러 등유를 넣고부터 50만원 정도 줄었다"고 했다. 1t 화물트럭 운전자 김모(32)씨도 보일러 등유를 쓰고 있다. ℓ당 287원의 경유 보조금을 포기해도 등유를 쓰는 게 더 싸기 때문이다. 그는 "잘 아는 '석유집'에 가서 보일러 등유를 넣고 장부에는 경유를 넣은 것처럼 해 보조금까지 챙기는 운전자들도 있다"며 "등유 사용이 편법인줄은 알지만 경유를 넣어서는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너도나도 보일러 등유
ℓ당 2천원에 육박한 경유값에 보일러 등유를 찾는 '막가파 사용자'들이 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보일러등유 판매량은 38만9천942배럴로 지난해 같은달 27만9천500배럴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공사 관계자는 "난방유 수요가 사라진 봄철임에도 이렇게 보일러 등유 판매량이 늘어난 것은 차량 주유용으로 팔려나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석유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올초부터 지난 4월까지 등유를 차량용으로 팔다가 적발된 주유소는 22개소로 지난해 7개소보다 3배가량 늘어났다.
이 같은 현상은 화물·운송 운전기사들뿐만 아니라 일반 경유 차량 운전자들까지 대거 가세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연 가격차. 보일러 등유 평균 가격은 ℓ당 1천523원으로 경유(1천917원)보다 400원가량 싸다.
보일러 등유를 집앞까지 배달해주는 판매상들도 활개치고 있다. '무쏘'를 타는 직장인 최모(38·북구 산격동)씨는 이달 초 차 앞 유리창에 꽂혀 있는 명함('보일러 등유 판매, ℓ당 1천550원, 배달전문')을 보고 집으로 등유를 배달시켜 넣고 있다고 밝혔다.
◆주유소에서 넣지 않으면 괜찮다?
경유 차량에 보일러 등유를 사용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은 등유를 차량용 연료로 불법 판매하는 주유소에 사업정지 1개월 또는 1천500만원 과징금과 2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 등을 규정하고 있다. 주유 차량 운전자도 사용량에 따라 최고 300만원 정도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문제는 운전자가 주유소가 아닌 곳에서 차에 주유할 경우 처벌하기가 모호하다는 데 있다. 대구 동부경찰서가 지난 4일 관광버스 기사들에게 500여차례에 걸쳐 14만ℓ, 시가 1억8천만원 상당의 등유를 배달 판매한 P(56)씨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사들은 사법처리할 수 없었다. 주유소에서의 등유 불법 판매는 양자 모두 처벌하지만, 주유소가 아닌 곳에서는 판매자만 처벌된다.
경찰은 "주유소에서 보일러용이라고 하고 직접 사서 차량에 넣는 운전자들이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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