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정약용이 '주역' 해설서를 쓴 이유

흔히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대표작은 '경세유표(經世遺表)'·'목민심서(牧民心書)'·'흠흠신서'의 '1표(表)2서(書)'를 꼽는다. 그러나 다산 자신에게 대표작을 꼽으라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주역사전(周易四箋)'을 꼽을 가능성이 더 크다. 정약용이 '윤영희(尹永僖)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유배지에서) 여러 예서(禮書)들을 거두어 치워놓고 오로지 '주역' 일부만을 가져다 책상 위에 놓고 마음을 가다듬고 깊이 생각하며 밤을 낮으로 삼아 보았습니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같은 편지에서 정약용은 "눈으로 보는 것, 손으로 잡는 것, 입술로 읊조리는 것, 마음으로 사색하는 것, 필묵으로 적는 것에서부터 밥상을 대하고 변소에 가고 손가락을 퉁기고 배를 문지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주역' 아닌 것이 없을 정도였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주역에 몰두했다.

이런 몰두 끝에 완성된 책이 주역 해설서인 '주역사전'이다. 흑산도에 유배 중인 중형(仲兄) 정약전(丁若銓)은 정약용이 보낸 이 책을 보고 "내가 처음에는 놀랐고 중간에는 기뻐했으며 끝에 가서는 무릎이 굽혀지는 줄도 알지 못했다"라고 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정약용 자신도 '두 아들에게 내려주는 가계(示二子家戒)'에서 "'주역사전'은 내가 하늘의 도움으로 얻은 문자들이다. 결코 사람의 힘으로 통하고 지혜로 도달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라고 쓸 정도로 큰 자부심을 나타냈다.

복희씨, 문왕, 공자의 저술로 평가되는 주역은 그간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다. 점술가들은 점치는 복서(卜筮)의 용도로 사용했고, 유학자들은 경서(經書)로 인식했다. 정약용은 주역이 복서의 용도로 사용되는데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주역으로 말하면 요즘 사람들은 하늘을 섬기지도 않으면서 어찌 감히 점을 칠 수 있습니까?"라고 비판하면서 중형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저는 지금까지 10년 동안 주역 공부에 전심했지만 하루도 시초(蓍草:점칠 때 쓰는 풀)를 세어 괘를 만들어 어떤 일에 대해 점쳐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만약 뜻을 얻는다면 조정에 아뢰어 점치는 일을 금하게 하기에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문왕, 공자 같은 성인들이 복서의 용도로 주역을 저술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었다. 그럼 성인들은 왜 주역을 썼을까? 다산은 '역론(易論)'에서 "주역은 무엇 때문에 지은 것일까? 성인이 천명(天命)에 청하여 그의 뜻에 순응하고자 하기 위해서였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정약용은 같은 글에서 "대체로 일이 공정한 선의에서 나왔는데 하늘이 반드시 그를 도와서 이루어지게 하며, 그에게 복을 주기에 넉넉한 것이라면 성인은 이를 다시 천명에 청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위정자가 펼치려는 정책이 좋은 뜻에서 나왔고, 그 후과(後果)도 잘못될 염려가 없는 것이라면 천명을 물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가난한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받게 배려해주는 교육정책이라면 천명을 물을 필요 없이 시행하면 그만이라는 뜻이다. 정약용은 또 '일은 공정한 선의에서 나왔지만 시세가 불리하여 반드시 실패로 돌아갈 일'이나 '일이 공정한 선의에서 나오지 않아서 천리를 거스르고 인기(人紀)를 손상하게 하는 것'은 천명을 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정책들은 보나마나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천명을 미리 엿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정약용은 "오직 일은 공정한 선의에서 나왔지만 그 일의 성패 화복은 역도(逆睹:사물의 결말을 미리 내다봄)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이에 비로소 천명에 청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좋은 뜻에서 나온 정책이지만 그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 알 수 없을 경우에 미리 하늘의 뜻을 엿보아 결정하기 위해 주역을 썼다는 것이다.

현재의 쇠고기·촛불 정국에 큰 시사를 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당초 소고기 수입 문제가 이렇게까지 확대되리라고 예상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건강에 직결된 문제를 처리하면서 하늘의 뜻을 미리 엿보려는 경건한 자세로 임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다. 민심은 천심이란 말이 있다. 그 전에 민초들의 눈높이에 맞는 인사를 등용해달라는 민심을 우습게 생각한데 대한 불만이 쇠고기로 폭발한 것이다. 이제라도 경건하게 하늘의 뜻과 민심에 따르려는 자세로 국정에 임하는데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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