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가정의 달을 보내고 나서

가정의 달 5월이 지난 지도 열흘이 돼간다. 지난 5월은 어느 집 할 것 없이 유난히 힘들고 우울한 달을 보낸 것 같다.

기름값은 뛰고 길거리엔 촛불과 경찰 방패가 부딪치며 길이 막히고 쇠고기를 먹어야 할지 말지 불안은 씻기지 않고 이래저래 얼굴 펴질 날이 없다시피 보냈다, 짜증내고 찡그릴 때 얼굴의 '표현근육'은 64개가 움직인다고 한다.

종이돈을 계속 폈다 접었다 하면 구겨지듯이 불만에 찬 찡그린 얼굴로 근육을 계속 움직이면 얼굴부터 빨리 늙게 된다고 한다.

반대로 미소 지을 때 움직여지는 근육은 17개고 찡그릴 때보다 50개 가까이 덜 움직이니 얼굴이 덜 늙고 그래서 웃고 사는 게 건강과 미용에 좋다는 거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 누구나 알지만 갑갑한 서민들 심정은 한마디로 '웃을 일이 있어야 웃지'다.

'복이 오면 그때 웃어줄게. 쥐뿔도 웃을 일이 안 생기는데 실성한 사람처럼 웃을 수도 없잖아'다.

헌 집이 재개발에 들어간 것도 없고 내려온 조상 논밭이 혁신도시에 들어간 일도 없는 절대 다수 서민들은 날 새면 고쳐 끼우는 주유소 기름값 숫자판만 봐도 열이 받치는데 뭘 웃으란 거냐는 심정들이다.

가정의 달을 보내며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으로 웃음 있는 건강한 가정을 꾸렸던가를 돌아보며 우선 몇 가지 덕목을 생각해 보자.

먼저 부부 스스로 '완성된 문장'으로 대화하고 있는가.

6세 이전에 말을 배우는 아이들을 위해 주어가 있고, 동사가 있고, 부사'형용사가 있는 완성된 문장으로 말하는 모범을 보이라는 뜻이다.

그래야 체계적인 사고력, 논술적 표현 능력이 형성된다.

우유 한잔을 마실 때라도 냉장고 문을 열면서 '뭐?'라고 하는 말과 '따뜻한 우유를 마시겠니, 차가운 주스를 마시겠니'라고 묻는 차이는 크다.

'뭐?'라고 묻는 엄마 밑에 자란 아이는 '우유!'나 '주스!'라고밖에 대답할 줄 모른다.

'따뜻한 우유 반 잔만 주세요'라는 완성된 문장의 대화 훈련이 안 된다.

그게 어디서 오는지 어른 세계를 돌아보면 안다.

아빠는 '재떨이!', 엄마는 '여 있구마!'식의 單答形(단답형) 토막 대화 속에 자라면 논술적 사고나 체계적인 통합 능력이 생겨날 리 없다.

'내다' '밥 뭇나'도 그런 類(류)다.

또 하나 묵은 얘기지만 지성보다 感性(감성) 교육을 하자는 거다.

똑같은 100만 원도 벌어들이는 것은 지성의 능력에 의해 결정되지만 어떻게 쓰느냐는 감성에 의해 결정된다. 책을 사고 기부를 하는 것과 노름에 쓰는 것은 감성교육에 좌우된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뗏지'라는 말로 과보호하는 빗나간 감성교육 문화는 自我(자아)는 없이 남 탓 말하는 근성을 키운다.

동네 친구 싸움에 어머니가 '뗏지' 하며 감싸주고 다시 어머니의 회초리는 할머니가 '뗏지'로 보호하면 더 큰 권력의 보호 아래 안주하려는 의타적 권력지향주의를 심어주게 된다.

그런 것들이 나중에는 '코드 문화' '줄서기 문화'로 이어진다.

'룰'보다는 인간관계의 보호망에 매달리고 숨으려 든다. 의타와 남 탓에 익숙해 자라다 보면 자기중심이 없으니 괴담에도 쉽게 휩쓸리고 자신의 판단보다 대세나 분위기에 쉽게 밀린다.

완성된 문장의 대화, 감성교육이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라야 촛불을 켜야 할 장소와 안 켜야 할 장소를 가릴 줄 아는 지혜를 더 잘 깨치게 된다.

김정길 명예주필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