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비만과 정신건강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는 남편이 자살한 뒤 그 충격으로 몸무게가 230㎏에 가깝게 된 어머니가 나온다. 거의 침대 위에서만 생활하는 어머니는 경찰서에 잡혀간 둘째 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수년 만에 처음으로 집을 나선다. 마을사람들은 산만한 덩치의 어머니와 네 자녀의 모습을 사진까지 찍어대며 킬킬거린다. 어느 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워낙 거구라 시신을 바깥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문을 부숴야만 했다. 더 이상 어머니를 놀림감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자식들은 고민 끝에 결정했다. 집을 불태우기로.

현실에서 비만문제는 영화 이상으로 더 심각하다. 날씬한 몸매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거식증에 걸리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갖가지 희한한 다이어트 비법들이 넘치는 세태다. 비만은 암보다 무서운 질병이 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공공의 적'이 된 지도 오래다.

비만 퇴치를 위한 노력도 눈물겨울 만큼 치열해졌다. 유럽 최고의 '뚱보나라'인 영국은 지난 2006년에 전 국민의 넘치는 살을 빼고 체력을 기르게 할 목적으로 '피트니스(fitness) 장관'이라는 생소한 직책을 만들기도 했다. 또 패스트푸드와 청량음료엔 '비만세(fat tax)'가 도입됐다. 프랑스에선 공립학교의 청량음료'과자 자동판매기 설치 금지, 비만 식품 광고 전면 금지 등의 정책을 쓰고 있다. 싱가포르는 1992년부터 모든 학교에서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실시, 운동량을 채우지 못하면 집에 가지 못할 정도로 엄격하게 운용된다.

비만에 대한 부정적 통념이 지배적인 가운데 한림대 의대 조정진 교수팀이 '적당하게 살찌는 것이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아 관심을 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정상 및 과체중 그룹에서 체중(㎏)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인 BMI가 1포인트 증가할수록 우울증 위험이 0.7% 포인트씩 줄었고, 가벼운 비만 여성이 정상 체중군의 여성보다 우울증 위험이 30% 적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경우 다소 풍만해 보이는 체형의 소유자들이 성격도 유연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런데 여성들에게 좀 똥똥하지만 건강한 정신과 우울증 위험이 높지만 마른 몸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란다면 어느 걸 택할까.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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