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대구 달서구 두류동의 한 주택가 골목. 4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손수레를 끌고 전봇대 아래로 다가왔다. 여성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검은색 봉지 두묶음을 슬쩍 내려놓았다. 이때 갑자기 "아주머니, 그러시면 안 됩니다"는 스피커 음성이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여성의 머리 위에서 "구청 청소과 상황실입니다. 쓰레기는 규격봉투에 버리셔야죠"라는 목소리가 재차 흘러나왔다. 여성은 봉지를 다시 주워 들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쓰레기 불법 투기와의 전쟁, 늘어나는 CCTV
"대부분이 깜짝 놀라세요."
모니터를 지켜보던 달서구청 청소과 공무원 최민학(28)씨는 마이크를 놓으며 빙긋 웃었다. 최씨가 근무하는 곳은 구청 청소과 내 '쓰레기 불법 투척 감시 상황실'. 81㎝(32인치) 모니터가 골목 곳곳을 실시간으로 비추는 모습은 흡사 경찰 상황실을 방불케 했다. 이곳에서는 달서구청이 지난달 19일부터 죽전동, 이곡동, 두류3동, 상인동 등 달서구 4곳에 시범 설치한 '음성·영상 복합 CCTV'를 운영 중이다. 대당 600만원이나 하는 이 신형 CCTV는 기존 CCTV와 달리 현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경고 방송이 가능하다. 상황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심야에 이뤄지는 투기는 다음날 화면으로 판독한다.
달서구청이 신형 CCTV를 보급한 이유는 극성을 부리는 쓰레기 불법 투기 때문. 구청 측은 "주택밀집지역에서 벌어지는 쓰레기 투기를 막기 위한 대책의 하나"라며 "일단 효과가 좋다"고 했다. 현재 달서구 내 쓰레기 투기 감시용 CCTV는 140대. 지난해부터 확대 보급되면서 적발 건수가 줄어드는 등 뚜렷한 효과를 내고 있다.
북구청도 이미 설치한 8대의 음성·영상 복합 CCTV의 단속 효과가 좋아 다음달 초 1대를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다. 북구청 측은 "그동안 골칫거리이던 비규격봉투 사용 행위, 대형폐기물 투기 행위 등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양심거울' '양심등불' '양심화단' 등 아이디어 총동원
서구 평리동의 한 주택가 전봇대 아래에는 둥근 모양의 대형 거울이 달려 있다. 쓰레기를 투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돌이켜보라는 취지에서 서구청이 지난해 설치한 것. 서구에는 이런 양심거울이 상습 쓰레기 투기 지점 17곳에 설치돼 있다. 주부 김인옥(37) 씨는 "딸아이와 외출하면서 검정봉지에 쓰레기를 담아 버리다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창피해서 혼났다"고 말했다.
구청들은 갖가지 아이디어를 총동원, 주택가 쓰레기 불법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중구청은 지난해 말부터 17곳에 개당 200만원짜리 '양심 등불'을 설치했다. 초록색 불빛에 '쓰레기 투기는 양심을 버리는 행위'라는 문구를 단 양심 등불은 야간 쓰레기 투기를 막기 위한 것. 구청은 주민 반응이 좋아 올해 하반기 각 동(13개)마다 1개씩 더 설치할 계획이다. 쓰레기가 쌓이는 곳에 작은 화단을 꾸미는 방법도 등장했다. 경대병원 응급실 옆, 삼덕동 신천변, 건들바위 등 7곳에 조성됐다. 70여만원을 들여 만든 10㎡ 남짓한 화단은 '꽃 핀 화단에 쓰레기를 투기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무언의 호소를 하고 있는 것. 중구청 환경과 김구중 담당은 "무조건 스티커부터 발부하는 것보다 양심에 맡기자는 취지"라며 "환경 미화의 효과도 거두고 있다"고 했다.
수성구청은 매월 2, 4째주 32명으로 '민·관 야간 쓰레기 방범대'를 조직, 2년째 운영 중이다. 야간 불법 투기를 적극적으로 적발하기 위한 조치. 덕분에 수성구 경우 지난해 1/4분기와 올해 같은 기간을 비교했을 때 단속 건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달서구청 김정호 청소과장은 "경기 불황 탓인지 쓰레기는 놔두고 종량제 봉투만 가져가는 일이 벌어지는 등 쓰레기 불법 투기 행위가 아직도 뿌리 뽑히지는 않고 있다"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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