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라벌 사람들/심윤경 지음/실천 문학사

신라인들의 얘기

심윤경의 신작 소설 '서라벌 사람들'은 흥미롭다. 관통하는 이야기도, 전개하는 방식도 이채롭다. 작가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 신라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심윤경은 우리가 잘 아는 선덕여왕과 연제태후(지증제의 아내), 화랑도, 무열왕 김춘추 등에 대해 우리가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전하고 있다.

연작 작품집의 첫 소설인 '연제태후'는 신라의 토착종교와 불교의 충돌, 성골의 세계인식과 새로운 인식의 충돌에 관한 이야기다. 어머니 연제태후는 남녀가 제단에서 교접함으로써 천신을 섬기는 신라의 토착 풍습을 지키려 하고, 아들 법흥제는 금욕과 수행을 바탕으로 하는 불교를 받아들이려 한다.

연제태후는 덩치가 컸다. 일찍이 지증왕이 태자시절 그 큰 덩치와 음경에 맞는 배필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뒤져서 간신히 찾아낸 배우자였다. 연제태후는 팔다리가 기둥 같아 비단옷을 입어도 갑옷을 입은 듯, 면경을 들어도 곤봉을 든 듯 보였다. 지증제와 연제태후가 나라의 안녕과 풍년,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하며 제단에 올라 교합하면 제단이 와지끈 무너졌다. 그들이 한 식경 넘게 교접하며 흘린 땀과 애액이 제단 아래로 흘러 그 아래 꿇어앉은 태자 법흥의 비단옷을 적시고, 벽력 같은 교성은 잠자던 동해의 용을 깨울 정도였다.

지증제 치세 내내 풍년이 이어지고 암탉이 매일 알을 다섯 개씩 낳았던 것은 황제와 황후(연제태후)가 보여준 놀라운 교합의 생명력 덕분이었다. 신라는 거대한 성골 황제부부의 교합례를 바탕으로 안녕과 번영을 누려왔다.

지증제에 이어 보위에 오른 법흥제는 박이차돈의 꼬임에 빠져 불교를 받아들이려 했다. 연제태후는 '부처는 제가 태어나고 죽은 서역으로 가라, 신국 신라에는 신국만의 풍습이 있다. 순 쌍놈의 중국인들이나 따르는 풍속을 신국 신라인들이 따르려 하다니 지극히 한심하고, 심히 우려된다'고 했다.

법흥제는 "어머니, 성골의 신묘함(교합제를 통한 신과 소통 등)만으로 닿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미추대왕께서는 일세의 성군이셨으나 재위 기간 중에 여러 차례 화재를 겪으셨고 수십 가구의 인가가 상했습니다. 신왕의 성스러움이 능통하였다면 어찌 그런 일이 벌어졌겠습니까?"라며 불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이에 연제태후는 "그러면 위나라에서는 불가의 도를 받아들여 더 이상 화재도 나지 않고 홍수도 없어진 신선의 나라가 되었다 하오? 내 그런 소문은 근래 듣지 못하였소만"이라고 답한다. 이 우스꽝스러운 대화는 새 문화와 구 문화가 충돌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관을 옹호하는 모습이 얼마나 '독단적'인가를 보여준다.

두 번째 소설인 '준랑의 혼인'은 화랑도의 허실과 화랑 간의 동성연애를 우아한 문체로 보여준다. 화랑들의 산천주유와 수련 속에 숨은 동성애, 이에 따른 부부 간의 갈등 등을 세심하게 들려준다.

세 번째 소설 '변신'은 무열왕 김춘추의 '변신'을 통해 골품제에 발목 잡힌 신라사회의 단면을 유감 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골품제는 강력한 신라의 근간이었으며 허약한 뿌리의 원인이었다. 김춘추는 백제를 멸망시켜 삼국통일의 초석을 다진 사람이다. 그는 성골이 보위를 잇는 신라사회에 진골 출신으로 제29대 왕에 즉위했다. 신라의 월성(궁궐)은 거인인 성골왕족을 위해 만들어진 성이었다. 계단도 높고 의자도 높고 침상도 높았다. 신라사람들은 성골황제였던 '선덕여제'가 지날 때마다 '이상하다, 이상하다'고 외쳤다. 선덕여제에게는 큰 덩치 외에도 설명하지 못할 신력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신라 사람들은 그 실체가 무엇인지 몰랐고,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다만 선덕여제의 능력을 흠모하며 '이상하다, 이상하다'고 읊조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김춘추는 신라 왕계인 성골이 아니었다. 그는 진골이었으며 그의 아내는 김유신의 누이동생으로 가야계였다. 대신들은 감히 가야계 아내를 험담하지는 못했다. 삼국통일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신들은 틈날 때마다 김춘추가 덩치 큰 성골이 아니라고 쑥덕거렸다.

김춘추는 허약한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성골로 변신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에게 변신은 다름 아닌 덩치 키우기였다. 그에게 날렵하고 단단한 몸은 자랑이 아니었다. 그는 역대 왕들인 성골처럼 덩치를 키워야 했다. 김춘추, 무열제는 종일 먹어댔다.

'네 명의 군사가 흰쌀밥이 가득 담긴 두 개의 함지박을 들고 왔다. 열 마리의 구운 꿩, 여섯 동이의 술이 뒤를 따랐다. 여인들은 밥을 둥글게 뭉쳐 황제의 입 안에 넣어주기 시작했다. 황제는 누운 자세 그대로 입을 크게 벌려 밥덩이를 받아먹었다. (…) 게 누구 없느냐? 생치 여섯 마리를 더 굽고 쌀 한 말을 더 안쳐라. 여봐라, 돼지를 잡아라. 썰지 말고 통째로 불 위에 얹어 구워라.'

무열제의 끔찍하게 부풀어오른 살 더미 속에 이목구비가 모두 파묻혔다. 눈알은 포도씨앗처럼 작았고, 콧구멍과 입술도 흔적만 남았다. 피부는 주름 한줌 없었고 온몸은 기름기로 출렁댔다.

무열제 김춘추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 밑의 바위가 갈라지고 부스러지기를 바랐다. 성골황제들이 그랬던 것처럼. 김춘추는 일어서면 두 손이 양 무릎에 닿는 선덕과 진덕 두 여주를 닮고 싶어했다. 그것이야말로 신(神)의 풍모였고, 정통성 있는 성골황제의 풍채였다. 그 자신 진골이며, 단신이었던 김춘추는 '거인'이 됨으로써 성골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신라인들이 선덕여제를 향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향해서도 '이상하다, 이상하다'라고 읊조리며 머리를 조아리기를 바랐다.

(이 부분은 신라사회의 중심이 성골에서 진골로 넘어오는 과정, 바야흐로 무열계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치러야 했던 혼란과 김춘추의 불안·야심 등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 작가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딱딱하고 살벌한 정치적 상황을 변신이라는 흥미로운 상징을 통해 풀어나가고 있다.)

마지막 단편 '천관사'는 김유신에 관한 이야기다. 천관녀에 반해 무시로 기생집에 들락거리다가 어느 날 개과천선했다고 알려진 김유신. 자신의 애마를 목 베고 영웅으로 재탄생했다고 알려진 사람이다. 작가는 김유신이 애마의 목을 치는 순간, 김유신이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모조리 잘라버렸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영웅 김유신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어했던, 사람인연을 따르고 싶었지만 그 인연을 제 손으로 잘라야 했던 한 아름다운 남자의 절대고독에 관한 이야기다.

연작소설 '서라벌 사람들'은 「연제태후」「준랑의 혼인」「변신」「혜성가」「천관사」 등 다섯 개의 개별 이야기가 모자이크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제태후, 선덕여왕, 김유신, 무열왕, 원효대사 등 서라벌 슈퍼스타들이 주인공들이다. 참 잘 쓴 소설이다. 269쪽, 9천8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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