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줄로 읽는 한권] 남자 여자는 서로에 어떤 의미

과연 사랑이란 존재하는 걸까/그러나 가끔은 목숨 걸 가치가...

"'저는 아직도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없군요.' 우오즈가 이렇게 말하자 상대방은 분명 난처한 모양이었지만 이윽고 결심한 듯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애정 같은 건 없지만 전 고사카씨와 단 한번 관계를 가진 적이 있어요.' 미나코는 고개를 깊이 숙인 채 두 손을 깍지 끼어 아래로 힘껏 뻗고는 그 맞잡은 손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어리석었어요.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어요. 그 일 때문에 아무래도 강하게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나서 미나코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빙벽'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김석희 옮김/ 마운틴북스 펴냄/ 650쪽/1만3천500원

"'우리… 이런 생활, 너무 소모적이잖아?' 신혜가 어둠 속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잠의 수렁 속으로 속수무책 끌려 내려가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나날이 그 사랑을 상실해가는 '삭막한 과정일 뿐'이라는 신혜의 말에 나는 간신히 동의한다. 사랑을 간직하려면 그걸 버리는 수밖에… 라고 말하려는데, 검은 휘장이 눈앞을 완전히 덮는다."

'촐라체'박범신 지음/ 푸른숲 펴냄/ 363쪽/9천800원

두 소설은 구태여 구분하자면 산악문학이라는 약간은 낯선 범주에 속하지만 사랑에 대한 주제를 가진, 그래서 더욱더 긴 호흡을 가지고 읽어야 할 장편이다. '빙벽'은 두 남자의 등반 사고를 둘러싼 의혹을 모티브로 삼지만 작품 전반에 흐르는 주제는 한 여자에 대한 두 친구의 사랑이다. 이에 비해'촐라체'는 각기 다른 삶의 상처를 지닌 세 남자가 등반 사고를 통해 자신의 삶의 편력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고백하건데 두 소설을 읽는 내내 저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불손하게도 여자와 남자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일상에서 과연 사랑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사랑과 섹스는 어떤 도덕적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을까? 내가 간직하고 있는 첫 키스의 추억을 그녀도 가지고 있을까? 자신할 수 없다면 나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한 것일까?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히말라야를 떠돌며 고민했던 사랑은 여전히 화두로 남아 있다. 세상은 사랑이 플라토닉이 아니라 플라스틱이라고 말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 또한 그저 살을 맞대고 살아가다 보면 사랑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소설이 소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놓고 고민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하지만 정말 가끔은 그 사랑이 어떤 것이든 사랑의 열망에 목숨을 걸고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두 소설 또한 아직은 읽을 가치가 있다.

전태흥(여행작가·㈜미래데이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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