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6월 12일 일본 수상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가 사망했다. 당시 야당 측의 내각불신임안이 가결되자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거 실시를 발표하였으나, 총선거를 며칠 앞두고 선거운동 중 심장병으로 죽었다.
그는 가가와현(香川縣)에서 출생, 도쿄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이 된다. 이후 1952년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를 시작, 1960년 제1차 이케다 하야토내각 발족 때 관방장관에 취임, 경제성장정책을 추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자유민주당 보수파 주류로서 외무장관·통산장관·재무장관 등을 역임했다.
1978년 11월 당원들에 의한 최초의 자민당 총재선거의 예비선거에서 현직의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를 이기고 드디어 총재에 피선, 총리가 됐다. 하지만 그후 후쿠다와의 2년간의 당내분쟁이 그를 최악의 지경에 이르게 했다.
그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한일국교정상화'의 주역이기 때문. 1962년 외무장관 재직시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과 벌인 한일국교정상화회담에서 최대의 난제였던 대일청구권 문제에 합의, '김·오히라 메모'라 불리는 각서를 교환함으로써 회담타결의 실마리를 풀었다.
▶1950년 한국은행 발족 ▶1982년 500원권 새 주화 발행
정보관리부 이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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