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인도에서 삶을 반추하다(하)

바라나시와 사르나트

삶(生)과 죽음(死)은 결코 둘이 아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삶과 죽음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삶을 부여받았기에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살아 있는 존재에게 죽음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이르다, 늦다는 시간 차이만 있을 뿐이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여러 종교에서는 윤회나 환생, 부활 등을 거론하며 죽음을 또 다른 삶으로 가는 관문으로 보고 있다.

우리에게 갠지스강으로 잘 알려진 인도의 강가(Ganga)강. 히말라야 산맥에서 발원, 벵골만으로 흘러드는 강의 중류에 바라나시가 있다. 인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의 하나인 갠지스에서 목욕하는 광경을 볼 수 있는 도시다. 그리고 강 옆에서 시신을 화장하는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반추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라나시를 보지 않았다면 인도를 본 것이 아니다. 바라나시를 보았다면 인도를 다 본 것이다"는 말도 있다.

수 많은 인도인들은 영혼의 죄를 강물로 씻어내고

13억 인도 인구의 82%가 믿는 힌두교에서 강가는 매우 신성한 존재다. 힌두교의 대표 신인 쉬바가 그 권능으로 천계(天界)에 흐르는 강을 지상으로 끌어온 것이 바로 강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 인도인들에게 강가는 성스러운 강이다. 인도 사람들은 강가의 성스러운 물에 목욕을 하면 모든 영혼의 죄가 씻어지고, 이곳에서 죽어 재를 강가에 흘려보내면 해탈과 초월을 얻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 때문에 수 많은 인도인들이 영혼의 죄를 씻기 위해 강가에 모여들어 목욕을 하고, 날마다 가트에서는 죽은 시신들이 화장된다. 바라나시의 원래 이름은 '카시'라고 하는데 '영적인 빛으로 충만한 도시'라는 뜻이다. 성스러운 강가 유역에 있는 도시에 걸맞은 이름이란 생각이 든다.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바라나시 다샤스와메드 가트에서 작은 목선을 타고 강가의 물결에 몸을 맡긴다. 가트란 강가와 맞닿아 있는 계단을 뜻한다. 전설에 따르면 힌두교에서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가 이곳에서 10마리의 말을 바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다샤스와메드에는 10과 말(馬), 희생이란 말이 다 들어 있다. 점차 어둠이 걷히고 어느 순간 강가 위로 해가 떠오른다. 성스러운 강가에 붉은 햇살이 드리운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20대로 보이는 인도 뱃사공이 천천히 노를 젓자 배는 강가를 거슬러 오른다. 이른 아침부터 강가와 가트 주변에는 경건한 표정으로 몸을 씻는 힌두교인들로 가득하다.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은 몸에 물을 끼얹고 있고, 물에 반쯤 몸을 담근 중년 남자는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린다.

어린 아이들은 몸에 고무 튜브를 두르고, 강가를 헤엄치며 맑은 웃음을 터뜨린다. 여행자의 눈에 비치는 강가는 온갖 오물이 떠다니는 강에 불과하지만 이들에겐 성스러운 의식을 행하는 곳이다.

화장한 뒤 해탈을 얻을 수 있는 곳도 강

20여분쯤 강가를 거슬러 오르던 목선은 이제 강가를 따라 아래로 흘러간다. 얼마 가지 않아 마니까르니까 가트가 보인다. 바라나시를 상징하는 곳이다. 가트 곳곳에서 시신을 태우는 불꽃이 보인다. 힌두교인들은 이곳에서 화장된 뒤 강가에 그 재가 뿌려지면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사람의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다. 죽는 순간 그 영혼은 육체를 떠난다고 믿는다. 영혼이 떠난 육체는 그저 하나의 물질에 불과할 뿐이라는 게 그들의 믿음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네처럼 죽은 사람을 비싼 관으로 장식하거나 돈을 들여서 호화 분묘를 만들지 않는다. 화장을 해서 그 가루를 성스러운 강가에 흘려보내는 게 가장 훌륭한 장례식이라는 것이다.

장작이 타며 치솟는 불꽃 속에서 한줌 재로 변해가는 '죽은 자'와 그것을 말없이 지켜보는 '산 자'를 보며 새삼 삶과 죽음의 경계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이 바로 마니까르니까 가트인 것 같다. 산 자의 현세와 죽은 자의 내세가 여기에서 서로 만나는 것이다. 시신을 태우는 불꽃을 멀리 바라보며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 다른 이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불가분의 존재임을 깨닫는다. 또한 삶의 소중함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닿는다. 유유히 흐르는 강가와 그 옆에 자리잡은 바라나시는 여행자들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곳이다.

부처가 최초로 설법한 '사르나트'

바라나시에서 북동쪽 10km 정도에 사르나트가 있다. 부처가 최초로 설법을 한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다. 석가모니가 태어난 룸비니와 도를 깨우친 부드 가야, 처음 설법을 한 사르나트, 열반한 쿠시나가르가 4대 성지로 꼽히고 있다.

혼잡한 바라나시와 달리 사르나트는 커다란 가로수들과 넓은 잔디밭이 인상적이다. 현장법사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사르나트에는 30여개의 사찰과 3천여명의 승려가 있었다. 부다 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그것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수백km를 걸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서 논하던 바라나시로 왔다. 바라나시의 외곽인 사르나트에 도착했을 때, 먼저 그곳에 도착해 있던 수행자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처음으로 설법하고 전파한다. 네가지의 거룩한 진리인'사성제(四聖蹄)'와 '팔정도(八正道)'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다멕 스투파'아쇼카왕 석주 '볼거리'

사르나트의 여러 유적지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다멕 스투파다. 6세기에 만들어져 일부가 파괴됐으나 외양은 그대로여서 탑 주위를 많은 사람들이 돌며 예불을 올리고 있다. 불교를 국교로 삼은 아쇼카왕의 석주도 볼거리다. 석주에는 아쇼카의 칙령이 새겨져 있으며 네마리 사자 모양의 기둥머리가 사르나트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기둥 머리는 인도의 공식적인 상징물이 돼 인도 화폐 등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사르나트를 돌아보면 혼탁한 세상에 진리를 설파했던 부처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나 이것은 내게 재앙이고 종기고 화며 질병이며 화살이고 공포이니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흙탕물에 젖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파니파타' 중에서)

인도정부관광청 라자스탄주 책임자-산자이 스리바츠

"인도에는 '손님을 신처럼 모셔야 한다'는 말이 있지요. 한국을 비롯 인도를 찾아오시는 모든 관광객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도정부관광청 라자스탄주 책임자인 산자이 스리바츠(45)씨. 인도정부관광청 한국홍보사무소 주선으로 인도를 방문한 한국 여행사 관계자 및 취재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과 협조를 한 그는 "인도와 한국의 관광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왕과 그 왕비인 허황옥의 얘기를 꺼내며 한국과 인도의 특별한 인연을 설명했다.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였던 허황옥은 배를 타고 가야에 와서 김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나와 한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소개할 정도로 열성을 보인 그는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인도에는 볼거리는 물론 먹을 거리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다"며 "또한 여행을 통해 인생에 대해 성찰하기에 가장 적합한 나라"라고 얘기했다.

문의 : 인도정부관광청 한국홍보사무소 02)2265-2235. www.incredibleindia.co.kr

글'사진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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