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단에 서는 친구의 얘기를 빌리면, 학기말에 성적표가 발송된 후에 자녀의 학점에 대해 직접 이의를 제기하는 부모들이 있다고 한다.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뒷바라지가 비단 입시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학점 관리까지 이어지는 모양이다. 상담소를 찾는 내담자도 예외는 아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오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부모가 자녀를 대신해 상담을 하기도 한다. 거개의 부모들은 조력자로서 답답하고 안타까운 나머지 하소연이라도 하러 상담실을 찾지만 간혹 자녀들의 삶에 시시콜콜 깊숙이 개입하려는 분들도 있어 내심 당황할 때도 있다.
'헬리콥터 부모'란 신조어가 있다. '헬리콥터 부모'란 헬리콥터의 프로펠러처럼 자녀의 주변을 맴돌며 간섭하고 지시하는 부모를 지칭한다. 자녀가 가는 곳은 어디든 쫓아가 끊임없이 관여하며 해결사 노릇을 해주는 부모들을 일컫는 말이다. 외국에서 생겨난 말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얘기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말처럼, 핵가족 시대에 부모의 지나친 과잉보호가 젊은 세대들의 의사결정권이나 자립의지마저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경제적으로 얹혀사는 '캥거루족', 어른 되기를 거부하는 '피터팬 신드롬' 등이 터무니없이 과장된 현상만은 아닌가 보다.
한 취업 포털 사이트가 20대 구직자를 대상으로 '구직활동 시 부모의 관여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부모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대답한 사람이 70%에 가깝게 나왔다고 한다. 적지 않은 부모들이 자녀의 인생에 개입하는 이른바 '헬리콥터형 부모'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다. 최근에는 프로펠러도 모자라 '감시 카메라'까지 장착하여 최신형 헬리콥터로 진화했다는 우스개는 웃어넘기기에 앞서 생각의 여지를 많이 남긴다.
부모가 자식에게 관심을 표명하고 무한의 사랑으로 대하고, 자녀 또한 부모의 말을 잘 따르고 의지하는 것이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문제는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자생력을 키워주기보다 무조건 해결해 주려는 '과잉친절'과 아무런 거부감없이 수용하고 의지하려는 자세다. 단순한 도움에서 벗어나 생활 전반에 걸쳐 통제하고 지시하려는 것은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능력을 감퇴시키고, 책임감이 결여될 뿐만 아니라 의타심도 커져 어른이 되어서도 문제해결 능력이 크게 떨어지게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헬기부모의 기저에 대리만족을 꿈꾸는 부모들의 이기적인 바람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시행착오를 '실패'로 단정하고 조급함으로 서둘러 개입하는 단세포 애정에서 벗어나 기다림의 미학으로 지켜보는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 재정립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말 안 듣는 자식 뒤에 말 못 듣는 부모 있고, 어설픈 부모 밑에서는 자식 노릇 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을 우리네 부모들은 알아야 한다.
김향숙(한국가정법률상담소 대구지부 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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