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는 지금 남북한의 정권 모두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
6·10 항쟁 21돌을 맞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대규모 촛불 시위에 쫓겨 이명박 대통령은 컨테이너 박스에 갇혀 버렸고,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기아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국내외 보수적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중대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점치고, 이에 대한 대비를 잇따라 강조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까닭은 그 어느 때보다 냉혹한 국제 경제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고유가, 고곡물가 등은 북한 경제에 직격탄을 가하고 있다. 경제규모나 능력면에서 수십 배 나은 남한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음을 고려하면 만성적인 외화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거의 사경을 헤맨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지난 4월 중순 이후 외국 원조가 거의 중단되면서 북한 내 쌀값이 더 크게 뛰고 있다고 한다.
지난 수년간 어려운 순간마다 수십만t의 비료와 식량을 지원했던 중국과 남한 정부의 태도가 이전과는 확 달라졌다. 중국은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낳은 쓰촨성 대지진 뒷수습과 8월 올림픽 개최 준비에 골몰하고 있고, 남한의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급급하다. 두 나라 모두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고려할 처지가 아닌 셈이다. 중국은 자국 내 식량난으로 북한과의 식량 거래를 중단했고, 비료 수출도 크게 줄였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북한을 길들인답시고 비료와 식량 지원을 거부하여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상태다. 특히 매년 30만~40만t 수준으로 북한에 보냈던 남한의 비료 지원이 중단됨으로써 올해뿐 아니라 다음해의 북한 곡물 생산량에도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이 해마다 겪고 있는 홍수나 가뭄이 올해 덮친다면 설상가상으로 적지 않은 취약 계층 주민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북한 주민들의 생존에 적색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촛불시위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또 다른 위기 변수인 셈이다.
국제사회도 이제 북한의 어려운 사정에만 눈을 돌릴 여유가 없다. 인도주의 위기는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고 글로벌화되고 있는 추세다. 국제사회가 아사 경보를 내보내고, 긴급 원조를 요청하고 있으나 성과는 미미하다. 긴급식량지원이 필요한 곳은 이제 북한뿐이 아니다. 당장 식량 위기는 국민의 40%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이집트 국민들을 비롯해 미얀마, 짐바브웨 등 전 세계를 덮치고 있다. 높은 곡물가격은 이들에게 이미 붙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10일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반테러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천명했다. 비핵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이 성명은 미국의 50만t 곡물 지원 등과 맞물리면서 북미관계의 빠른 진전을 예고한다. 일본과도 11, 12일 오랜만에 마주앉아 북일 국교 정상화 실무그룹 공식회담을 연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제스처를 취할 경우 북미관계와 더불어 북일관계도 성큼 앞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한 주민 모두의 민심을 잃어버렸다. 대운하, 의료 민영화, 공교육 문제 등 제2, 3의 촛불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정책의 실패마저 더해진다면 식물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듯하다. 남남 갈등 못지 않게 파급력이 강한 것은 지난 역사가 보여줘 왔듯이 남북 갈등이다. 대북정책이 더 큰 문제로 다가올 수 있는 셈이다. 지금으로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만이 남북한의 문제 모두를 푸는 유일한 해법으로 보인다. 북한의 실제 기아 발생은 순수 인도주의적 차원뿐 아니라 회복하기 힘든 갈등관계를 고착화한다는 점에서 당장 식량 지원으로 북한을 포용하고 소통해야 할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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