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외국인 근로자를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공식적으로 대구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4천349명(3월 31일 현재·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 자료)이지만 미등록 근로자를 더하면 1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외국인 근로자, 그들은 대구의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각자의 취미를 찾아
인도네시아 출신 주민(33)씨는 매주 두차례 대구 달서구 갈산동 인도네시아 카페 '이돌라'로 향한다. 친구들과 모여 밴드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주민씨가 밴드활동을 한 지 6년째. 토요일 밤이면 인도네시아 동료들을 위해 라이브 콘서트도 연다. 고국에 있을 때 음악공부를 한 건 아니었지만 한국에 와서 친구들의 도움과 독학으로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지난 11일에도 그는 '이돌라'에서 친구들과 연습에 한창이었다. 기타와 드럼에 인도네시아 민속 피리인 술링(Suling)이 어우러지며 묘한 음색이 흘러나왔다. 옆에서 당구를 치던 동료들도 무대 앞에 모였고 따라 부르기도 했다. 주민씨는 "고된 일만 계속해서는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다"며 "친구들과 연주를 하면서 향수도 달래고 기분전환도 한다"고 말했다.
수라지(32·네팔)씨는 3년째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소출력라디오인 SCN성서공동체FM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자원봉사로 네팔 소식과 음악을 전해주고 있는 것. 네팔에서 아나운서를 한 경험을 살려 진행을 한다. 그는 "고국 소식을 전해주고 음악을 들을 수 있어 힘이 된다"고 말했다.
씨리(35·네팔)씨의 취미는 한국 드라마 감상이다. 일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끝내면 바로 드라마에 빠져든다. 그가 본 드라마는 20개를 넘을 정도. 씨리씨는 "한국 드라마는 남녀간의 삼각관계가 주된 줄거리이고 네팔 드라마보다 훨씬 상황이 리얼해 재미있다"며 "그런데 실제 한국에는 조강지처 클럽의 등장인물처럼 불륜이 많냐?"고 되물었다.
◆여가는 어디서?
외국인 근로자들의 여흥 문화도 한국인과 다르지 않다. 시간 나면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가고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한다. 11일 오후 대구 달서구 S노래방. 노래방 안은 온갖 노랫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생경한 소리도 들렸다. 베트남 노래. 이곳은 주말만 되면 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 각국의 노래가 뒤섞여 묘한 화음을 낸다. 대구에서 드물게 아시아인들을 위한 노래방 기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 노래방은 방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중국 등 5개국 노래가 따로 입력돼 있다. 한국 노래방 기계에 각국의 노래를 입력해 놓은 덕분이다. 최신곡은 없지만 고향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게 장점. 덕분에 외국인 근로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노래방 업주는 "주말이면 1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며 "베트남 근로자들은 조용히 앉아서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고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은 춤을 추며 노래한다"고 귀띔했다.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각국별로 마련된 쉼터다. 식료품 가게와 식당을 결합해 식사와 놀이, 모임을 할 수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 고향 음식을 맛보거나 당구를 치고, 자국 위성방송을 보거나 인터넷도 이용한다. 불법 체류자 단속 정보도 교환하는 정보 창고이기도 하다. 이슬람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말릭(파키스탄)씨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겐 식당이 중요한 회합장소"라며 "주말에는 50명 이상이 내내 자리를 채운다"고 말했다.
생필품이나 의류는 주로 대형마트에서 구입한다. 가격 부담이 적은 탓이다. 성서공단 주변의 와룡시장이나 서남시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와룡시장에 단골가게가 수두룩하다는 후세인(35·파키스탄)씨는 "재래시장이 훨씬 가격이 싸기 때문에 주로 이용한다"며 "고국 음식이 그리울 때는 아시아 식료품 가게를 찾는다"고 말했다.
주말이 되면 외국인 근로자들은 동아백화점 뒤편 교동시장 인근으로 모인다. 아시아 물건을 취급하는 아시아마트가 있고, 먹자골목, 각국 카페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와완(28·네팔)씨는 "주말이면 동아백화점 인근에 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식당에서 볶음밥을 먹기도 한다"며 "평소 만나기 힘들었던 친구들도 이곳에 가면 모두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절대 부족한 문화공간
외국인 근로자들이 섣불리 발을 딛지 못하는 영역은 대중목욕탕이다. 함께 벌거벗고 목욕을 하는 문화가 익숙지 않은데다 사람들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피부 색깔을 이유로 온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에는 기겁할 정도라고.
아시아인을 향한 왜곡된 인종 차별의 시선도 이들에겐 껄끄러운 환경이다. 술집이나 식당에서 시비를 거는 한국인들이 있다. 킴탄(34·여)씨는 "불법 체류자 단속이 적지 않고 술에 취해 시비 거는 경우가 있어 주로 집에 머무는 편"이라며 "여가를 보낼 곳이라곤 공원 등지가 전부여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무료한 일상을 보낸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마음 편히 찾을 만한 곳은 많지 않다. 외국인 근로자가 가장 많은 달서구의 경우 외국인 관련 업소는 모두 12곳. 상점과 식당이 전부이고 문화공간은 전무하다. 달서구는 지난해 말 외국인 특화거리 조성 계획을 냈다가 주민들의 반발이 심하다는 일부 구의원들의 반대로 타당성 조사 예산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정수경 SCN성서공동체FM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과 자국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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