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태의 중국이야기] 절묘한 양안 전략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맞다. 인재와 천재로 침몰직전에 처한 것 같은 중국의 최근 행보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하다. 농축된 티베트의 불만과 계속되는 여진, 그리고 지구촌 전체가 겪는 유가인상의 소용돌이 속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더 또렷하게 할 일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대만의 장빙쿤(江丙坤) 해협교류기금회 이사장이 대륙을 방문하여 중국의 천윈린(陳雲林) 해협양안관계협회 회장과 만났다. 회담을 통해 양자는 주말 직항노선 개설과 대륙 관광객의 대만 방문 합의서에 서명하고, 교류확대를 위한 각종 대화채널의 복원, 군사적 긴장 및 경쟁해소, 양안 경제협력을 포함한 전방위의 교류방안을 논의했다. 이는 1999년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총통의 양국론 주장이후 중단되었던 대화가 재개되었다는 의미 이상의 시사점이 있다.

우선 시기적으로 절묘하다. 내부적으로는 올림픽을 불과 두 달 앞두고 있으며, 지진으로 인해 중국전체가 고통을 받고 있는 시점이다. 외부적으로는 민주당후보경선이 끝이 나서 미국대선이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한 시점이다. 다시 말해 협력의 명분도 있고, 협력을 가로막을 방해자도 없다는 뜻이다.

만약 올림픽이나 지진이라는 문제가 없었다면 양안 모두 국민적 동의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만약 미국이 대선에 얽매이지 않고 있다면 군사적 긴장과 경쟁관계 종식에 합의한 대만의 행보를 수수방관할 리 만무하다. 양안갈등이 미국에 얼마나 많은 이익을 주었는가는 대만관계법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 스스로가 더 잘 안다. 그런데도 미국은 지금 속수무책이다. 집권당 후보인 매케인과 변화를 주장하는 젊은 경쟁자 오바마의 한판 승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양측 경합이 오차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고, 따라서 화교를 비롯한 미국 내의 소수민족들이 중요한 캐스팅보트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사소한 논쟁거리가 당락변수로 연결될 수 있어서 어느 측도 양안관계에 대해 쉽게 간섭하거나 개입할 수가 없는 입장이다.

또 하나는 민간 기구를 앞세움으로써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분쟁거리를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양 기구는 실제로는 반관영기구이지만 표면상으로는 민간기구이다. 따라서 민간교류라는 명분으로 양안 간 미해결된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미국이라는 제3자의 개입을 배제할 수 있다. 이번 회합의 주체인 두 기구는 냉전해체가 진행되는 시기에 결성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다음해인 1990년, 대만이 먼저 해협교류기금회를 결성했다. 이에 보조를 맞춘 중국이 1991년 해협양안관계협회를 결성했다. 이어 소련이 완전히 해체된 1992년 이들 두 기구는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국과 대만이 각자의 명칭을 사용한다는 내용의 '92공동인식'을 이끌어냈고, 양안관계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 개입을 차단하는 데 주효했다.

미국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양안 두 기구의 회합, 같은 처지에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중국처럼 민간 기구를 앞세워 미국 대선을 기회로 활용하지는 못해도, 일본처럼 총리문책을 통해 발 뺄 명분을 마련할 필요는 없어도, 너무 용감하게 나서지는 말아야 할 듯하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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