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JSA)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기이한 공간이다.
전후좌우 800m에 이르는 좁은 공간에서 양측의 경비병들이 눈을 마주하면서 대치하고 있다. 서로의 냄새도 맡을 수 있고, 옷의 솔기까지 볼 수 있다. 침을 뱉으면 맞을 수도 있는 거리에 있지만, 둘은 심리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인간이다.
한 핏줄, 한 조상, 한 땅에 있으면서 하나가 될 수 없는, 그 비극적 운명을 JSA의 경비병이 상징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 병사의 총격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미스터리 성격의 영화다. 비오는 캄캄한 밤, 북측 초소에 총성이 울린다. 낭자한 피 속에 두 명의 북한 경비병이 사망하고 현장을 탈출한 남측 병사는 양측의 총격전 속에 귀환한다. 이 사건을 두고 북측은 남의 도발이라고 선전하고, 남측은 북을 응징한 쾌거라고 환호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그들만의 일탈이다.
서릿발 같은 감시와 경계 속에 그들은 초코파이를 까먹으며, 낄낄댄다. 모자를 비딱하게 쓰고 어깨에 손을 얹어 사진을 찍고,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서 닭싸움을 하며 마치 동네 형 동생이 만난 듯 같이 시간을 보낸다. 낮에는 눈을 부라리며 대치하지만, 밤이면 이렇게 하나가 된다.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은 그들에게는 참으로 함께(Joint) 하는 안전지대(Security Area)인 것이다.
가장 첨예한 대립 속에 펼치는 그들만의 '단독강화(單獨講和)'는 이념의 갈등을 비웃는다. 특히 총알로 공기놀이를 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전편을 꿰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서로를 죽이기 위해 소지하고, 정말로 서로를 죽이는 권총 탄환은 놀이를 통해 이들의, 나아가 한반도의 비극적 운명을 희화화하고 있다.
"전쟁나면 똥은 물이 되고, 똥물이 되고, 피와 뒤엉켜 피똥물이 되고, 바다로 흘러들어 피바다 된다는 기야. 다 뒤져 버리는 거지. 그런데 광석이는 왜 기리 일찍 죽었대?"라고 오경필이 묻는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겪은 입대날의 우울한 단상으로 그려낸 곡이다. 군대에선 군가로 단련되지만, 그 속에 흐르는 피는 여전히 젊은 날을 보내야 하는 답답함과 서글픔이 배어 있다. 오경필의 대사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그들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그들의 일탈은 용납받지 못한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우광훈은 똥을 누다 지뢰를 밟은 것으로 우정이 싹튼다거나, 초코파이를 통해 베트남전을 얘기하는 등 이들의 가벼운 일상을 통해 분단과 통일의 거대 담론을 풀어낸다.
흥미로운 것은 첫 두 문장이다. 영화에서 보이는 북한의 풍경에 '쌀은 공산주의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거기에 시인은 '쇠고기는 자본주의다'라는 말을 덧댔다.
시인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들이 국제적, 계급간의 이해관계와 파워게임, 보혁 갈등 등 자본주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 대비시켰다"고 했다. 한반도에서 여전히 유효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 오경필과 이수혁의 우정과 형제애가 부정되는 현실을 '쌀'과 '쇠고기'로 잘 표현하고 있다.
화가 박철호는 비무장지대에 있는 갈대밭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강과 산이 존재하고 온갖 동물들이 내왕하지만, 유일하게 사람만이 들어갈 수 없는 JSA. 바짝 말라 금방이라도 불붙을 듯 한 상황을 갈대밭으로 표현했다.
중앙의 검은 경계선은 분단 상황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아래에 위치한 지뢰는 그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켜주고 있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감독:박찬욱
출연:이영애, 이병헌, 송강호
러닝타임:110분
줄거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측 초소에서 총격사건이 터진다. 북한 병사 정우진(신하균)과 최상위가 죽고, 오경필(송강호) 중사가 부상을 입은 채 발견된다. 남한 초소병 이수혁(이병헌)은 군사분계선 위에 쓰러져 있다. 중립국 감독위원회에서 파견된 한국계 스위스 장교 소피(이영애) 소령에게 수사가 맡겨진다. 남과 북의 주장이 서로 다르고, 양측 병사들도 서로 다른 거짓 진술을 하지만 서서히 진실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다. 소피는 4명의 남북의 군인들은 이념을 떠나 그들만의 화해를 하고, 밤 근무시간에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화해는 용납될 수 없기에, 결말은 비극적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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