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베르디가 부각시킨 바리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바리톤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테너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지만, 적지 않은 분들이 바리톤의 중후하고 육중한 음성에 매료된다.

하지만 오페라에서 바리톤은 그렇게 좋은 역할을 맡는 성부(聲部)가 되지 못한다. 로맨틱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못한 인격들이 대부분이다. 바리톤은 일단 사랑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토마의 오페라 '햄릿'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햄릿이 바리톤이라는 것은 오페라의 세계에서는 무척이나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바리톤은 원래 테너와 소프라노가 사랑을 하는 가운데 끼어들어서, 테너의 라이벌 즉 연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즉 테너와 함께 같은 여성을 사랑하지만 그 여성은 테너를 사랑함으로써 바리톤은 사랑의 실패자가 된다. 하지만 그러므로 그들은 테너나 소프라노에게 복수를 하는 악역이 되는 경우가 많다.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의 루나, '가면무도회'의 레나토, '에르나니'의 카를로, 벨리니의 '청교도'의 리카르도,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의 벨코레 등이 이런 경우다.

바리톤이 테너의 연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주인공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역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주로 테너의 친구이거나 부하 또는 측근들이다. '오텔로'의 이아고, '운명의 힘'의 카를로, '돈 카를로'의 로드리고 등이 그들이다. 악역을 맡는 바리톤은 무척이나 악하고 프리마돈나인 소프라노의 죽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원래 바리톤은 오페라에서 크게 각광을 받는 배역은 아니었다. 애당초 남성 성부는 테너와 베이스의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며, 베이스에서 분파(分派)된 바리톤은 비교적 나중에 중시되었다.

그런 바리톤이 오페라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은 베르디의 공로였다. 베르디는 바리톤을 무척 좋아하였는데, 바리톤이라는 멋진 음성을 아버지를 표현하는 데 사용하였다. 그때까지 오페라 속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단순히 수평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었으며, 아니면 거기에 한 명의 연적이 끼어들어 삼각관계가 되는 정도였다. 그런 구도에 아버지라는 인물을 등장시켜서 사랑은 세대 간의 수직적인 갈등과 입체적인 형태를 보여주게 된 것이다. 이때 베르디는 늘 아버지를 바리톤으로 설정하여 그 멋지고 듬직한 음성으로 아버지의 말씀을 노래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돋보이는 베르디의 작품들은 '아이다'의 아모나스로,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의 몽펠리에 등이다.

그러던 베르디의 아버지는 단순히 테너의 뒤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것을 뛰어넘어서, 점점 오페라의 전면에 대두되게 되었다. 심지어 오페라의 제목조차 아예 아버지의 이름을 붙인 것들이 등장하게 되었으니, 베르디에 이르러서 바리톤은 전성시대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바리톤이 타이틀 롤이 되는 경우는 '리골레토'를 위시하여, '나부코', '시몬 보카네그라', '루이자 밀러' 등이다. 베르디의 '맥베드'같은 작품은 바리톤은 비록 아버지 역은 아니지만, 역시 당당히 오페라의 타이틀 롤이 된 경우이다.

베르디 이후로는 다시 바리톤의 위상이 떨어지게 되었으니, 베르디 이후의 오페라에서 명 바리톤 아리아는 몇 곡도 되지 않는다. 이렇듯 바리톤이라는 성부는 베르디라는 한 명의 작곡가에게 큰 신세를 졌다.

박종호 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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