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에서] 홀로서기 공부

우리 학교 아이들 등굣길은 꽤나 힘이 든다. 육교를 지나면 경사 45도가 넘는 가파른 계단을 만나는데 그 계단을 헉헉대고 올라 마지막 계단을 밟아야 운동장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그 계단을 오를 때는 모두들 힘들어한다.

그 계단을 오르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입고 있는 옷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난관 봉에 매달려 올라오는 아이, 억지로 두 칸씩 건너 밟아 올라오는 아이, 칸마다 두 발을 모았다가 올라오는 아이, 엉금엉금 기다시피 올라오는 아이, 일부러 헉헉대면서 올라오는 아이….

힘들어 계단을 올라오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다기보다는 대견스럽고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학교 교문을 너무 평평하게만 만들 것이 아니라 작은 오르막이나 계단 같은 것이 있어서 조금은 긴장감을 갖고 운동장에 들어서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양손 가득 준비물을 들고 올라오는 아이들은 힘들겠다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것도 공부거니 생각하니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뭘 그렇게 많이 가지고 오나요?" 아이가 들고 오는 종이가방을 벌려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물어 보았다. "오늘 실과 실습으로 음식 만들어요." 하나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이 씩씩하게 대답을 한다. "이야, 재미있겠다. 몇째 시간이니? 얻어먹으러 가야겠다." "예, 오세요. 정말 오시는 거지요?" 문에 서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필자나 주방기구를 힘들게 들고 오는 아이들이나 이 짧은 대화는 작은 재미를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날마다 교문 바로 앞까지 승용차를 몰고 와서 아이를 내려놓고 가는 학부모가 있다. 아무리 그러지 말라고 해도 안 된다. 물론 아이가 몸이 아플 때는 교문까지가 아니라 주차장까지도 데리고 와야 하지만 그게 아니다.

교육이란 따지고 보면 홀로서기 연습이다. 부모가 언제까지나 곁에서 보호자가 되어줄 수 없으니 홀로서기 방법을 잘 익혀서, 부모가 없더라도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게 하자는 것이 학습이고 교육이 아니겠는가. 이 말에 동의한다면 아이들을 그렇게 가까이 자꾸만 가까이 안기만 해서는 안 된다. 적당한 간격을 벌려 나가야 한다. 작은 것에서부터 홀로서기를 익혀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교육에서 바뀔 수 없는 창의성 기르기, 이는 많은 것을 주는 데서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을 힘들게, 어렵게, 곤란하게. 불편하게 하는 데서 창의성이 생겨난다.

필자가 어릴 때는 장난감을 대부분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 팽이도 직접 만들어서 놀았고, 연도 만들어서 날렸다. 망가진 비닐우산에서 나온 대나무를 다듬고, 자르고, 휘어서 연의 살을 만들었다. 문종이를 오리고 붙여서 몸통을 만들고 꼬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힘들여 만든 연이 잘 날지 않으면 대나무 살을 뒤로도 밀어보고 앞으로도 당겨 본다. 그래도 시원찮으면 왼쪽 꼬리, 오른쪽 꼬리, 중간 꼬리를 길게 혹은 짧게 조정하여 날려 본다. 이렇게 저렇게 궁리하고 주물러서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연! 학교 앞 문방구에서 돈 쑥 내밀고 산 연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어느 것이 더 편리하고 어느 것이 더 불편한가? 둘 가운데 어느 것에서 창의성이 나올까는 너무나 뻔하다.

윤태규(대구 남동초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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