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돌아오는 건설의 날(6월 18일)이지만 올해는 유달리 착잡한 심정이다.
건설은 국가 경제 발전의 중추산업이며 단일 산업으로도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산업이다. 특히 전후방 파급 효과와 고용 유발 효과(총 취업자의 9%가 건설산업 종사자)를 고려할 때 지역 경제 활성화는 지역 건설 경기 회복 여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전국 7만여 건설업계(전문 건설업, 전기공사업 포함)는 유례없는 원자재 대란, 수주난, 분양난 등 3중고를 겪고 있다. 여기에 화물연대 등의 파업까지 겹쳐 업계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대량부도, 대량실업의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철근 한 품목만 봐도 작년 3월 t당 50만원에서 6월 100만원을 돌파하였다.
연간 국내 철근 총 수요량은 약 1천만t으로, t당 50만원이 인상되면 연간 5조원이 고스란히 건설업체의 추가부담이 된다. 국내 1만3천개 원청 건설업체가 연간 약 100조원을 수주하는데 평균 순이익률을 5%로 추정하면 총 5조원의 전 업체 순이익이 일부는 철강업체로 이전되고 나머지는 허공에 날아간다.
관급공사의 경우 E/S(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로 일부 보전이 되나 제도의 미흡으로 요즈음과 같은 폭등시는 그 반영폭이 미미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최저가 입찰제 확대, 분양가 상한제 고수, 분양가 인하압력 등 건설업체가 모든 짐을 지고 있는 형국이다.
답답한 마음에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 본다.
1. 스페인 빌바오 시: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폐탄광촌과 제철소가 있던 인구 40만의 쇠락한 도시에서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세계적 브랜드 도시로 극적인 반전을 하게 된 계기는 오로지 건물 하나에서 비롯되었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를 초빙, 1억5천만달러를 투자해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으면서부터다.
대구는, 우리나라는 왜 그런 건물을 못 지을까?
2.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930년대에 건립된, 당시 세계 최고의 102층 건물인데 당시 기술로도 총 공기가 단 18개월이 걸렸다.
우리나라는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으로 공기 단축 기술이 뛰어날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25층 아파트 한 단지 건설에 평균 30개월이 소요되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공사기간은 미국 일본에 비해 1.3~3배 길고 건설업 노동 생산성은 일본의 50%, 미국의 73% 수준이다.
3. 조선 산업 경쟁력 세계 1위, 수주고 세계 1위에서 6위까지 우리 조선업체 싹쓸이:조선산업과 건설산업은 매우 유사하다. 다 같이 수주산업이면서 하도급과 많은 부품의 조립산업이란 점이 그렇고 대형 철구조물을 도크 안에서 만들면 배가 되고 땅 위에서 만들면 건물과 교량이 된다.
그러나 건설산업 경쟁력은 세계 25위, 선진국의 67% 수준으로 초라한 실정이다.
위의 사례들에서 그 원인을 건설업체에만 돌리는 것은 온당치도 않고 그래서는 절대 건설 선진화를 이룰 수 없다.
건설산업에 대한 규제는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이다.
규제개혁위원회 등록 건설분야 규제는 대략 250여 법규에 680여건이나 된다고 한다. 조선산업에서 조선산업기본법, 조선기술관리법, 감리법, 선박가격상한제, 조선입찰 최저가제, 하도급의무제, 하도급비율심사제 등 거미줄 규제가 있어도 세계 1위가 가능할까?
빌바오시가 국가계약법, 최저입찰제 하에서도 그런 건물을 가질 수 있었을까?
기술 융합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칸막이식 업역 규제와 기술영역 세분화로 건물 하나 짓는 데 국토 해양부의 건축법, 주택법, 건설산업기본법 등 수십개의 법규를 비롯해 지식경제부의 전기공사업, 정보통신공사업, 행정안전부의 소방공사업, 환경부의 폐기물처리업, 교육과학기술부의 엔지니어링업, 노동부의 안전보건법령, 심지어는 문화재청의 문화재발굴업까지 가히 전 부처를 망라하는 업종과 부처별 관할에 따라 수많은 분야로 세분화된 기술자를 투입하고도 102층 건물을 18개월에 완성할 수 있을까?
反시장적인 분양가 상한제 하에서 성냥갑 아파트를 탈피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러한 중복규제로 인한 비효율만 제거해도 공사비를 10%는 줄일 수 있다.
수십년을 끌어온 건설 규제의 일대 개혁과 건설산업의 글로벌 스탠더드化는 언제나 될 것인가.
우리 건설업체도 빌바오 미술관을 지을 수 있고, 금호강에 센강 미라보 다리와 같은 아름다운 교량을 놓을 수 있고, 조선산업을 능가하는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이러한 전제만 해소된다면.
이홍중 대한건설협회 대구광역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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