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농수산물시장 위상 되찾자…<상>실태와 해법

한때 한강 이남 최대의 농산물 유통기지로 알려졌던 대구 북구 매천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올해 설립 20주년이 되는 이 곳의 \
한때 한강 이남 최대의 농산물 유통기지로 알려졌던 대구 북구 매천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올해 설립 20주년이 되는 이 곳의 \'스무살 성년식\'이 초라하다. 전문가들은 \"경쟁을 잃어버린 것이 근본 원인\"이라며 새로운 제도 도입을 통해 시장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라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출하대기중인 농산물.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전국에서 알아주던, 한강 이남 최고라던 대구의 '대표선수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다. 서문시장이 그랬고, 경북대가 그 대열에 끼였다는 목소리가 나왔으며, 섬유산업도 대구가 낳은 전국 대표선수 유니폼을 벗어젖혔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엔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이 또하나의 '불명예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방 최대 농산물유통시장이라는 명성을 잃고 있는 것이다.

올해로 개설 20주년. 성년을 맞은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은 활기 넘치는 '청년'의 모습이 아니다.

2차례에 걸쳐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의 추락 원인을 분석하고, 브랜드 명성을 되살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본다.

◆지금 이 곳에서는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은 내륙시장인만큼 농산물 비중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 수산물보다는 농산물 유통기지로서의 '명예'를 누려왔다. 경북은 물론 경남, 전라·강원도 농민들까지 이 곳을 왕래하며 물건을 쏟아내고, 이 물건을 잡기 위해 전국의 상인들이 또다시 이 곳을 찾곤 했다.

이 곳은 산지에서 농산물이 들어오면 '경매'를 거치도록 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운영해왔다. 경매를 주도하는 것은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안에 상주하는 5곳의 '법인(法人)'. 대구시로부터 공식허가를 받고 시장에 상주하는 법인들은 이 곳에 농민들이 출하한 농산품이 들어오면 경매에 붙이고, 법인에 소속된 '중도매인'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적정 가격을 써낸다. 다른 경매와 마찬가지로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중도매인이 출하된 농산품에 대한 판매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경매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매는 형식일 뿐 농민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중도매인에게 미리 연락하고 물건을 건넨다.

실제로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의 엽채류(배추·무·양배추 등) 경매 때 경매에 참여한 중도매인들이 자신이 써낸 가격을 다른 중도매인에게 거리낌없이 보여주면서 미리 섭외한 '자신의 물건'에 대해서만 경매에 참여하는 사실을 취재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대구시가 지난해 1억원을 들여 수행한 용역조사에서도 특정 농민은 계속해서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중도매인에게만 물건을 넘기고 있는 등 경매는 허울일 뿐 경매가 진행되기 전 농민과 중도매인간에 사전 교섭이 있었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무너진 경매 체제, 어떤 문제를 불렀나?

현재의 도매시장내 유통 시스템인 경매제도. 이는 1970년대 농수산물도매시장의 운영방식으로 도입됐다. 농민들이 상인들에게 '휘둘려' 제값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가장 비싼 가격을 써낸 상인이 물건을 획득해가는 경매제도가 농민들에게 최적의 값을 쳐주는 최선안이라고 30년전 정부 관계자들은 판단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유통환경이 변했다. 농민들은 인터넷, 휴대전화 등을 통해 엄청난 양의 시장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됐고 경매가 아니더라도 더 나은 값에 물건을 낼 수 있는 '능력'을 농민들도 서서히 갖게된 것이다.

때문에 기존의 경매제도, 즉 농민→법인 경매→중도매인에게 릴레이되면서 판매가 결정되는 방식의 기존 도매시장내 '경매형 유통체제'는 존재 가치를 잃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경매를 붙이는 '법정 주체'인 법인이 농산물 판매가격의 4%에 이르는 수수료를 가져간 뒤, 실제적으로 경매를 수행하는 중도매인도 4%의 수수료를 떼가면서 '2중 유통체제'로 인한 과다 유통비용에 대한 문제제기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름만 경매일 뿐 실제로는 농민들이 바로 중도매인에게 물건을 넘기는 방식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단지 법정 허가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법인들에게 '엉뚱한 수수료'가 지불되고 있는 것이다.

수십년째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중도매인을 하면서 최근 '농수산물도매시장 개혁운동'을 벌이고 있는 신상기 '시장도매인 도입추진위원회' 위원장은 "농민들이 중도매인에게 바로 물건을 넘기면 유통과정이 한단계 줄어 법인에게 들어가는 엉뚱한 수수료 4%가 사라진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화석화된' 경매제도 때문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법인이 가만히 앉아서 4%의 수수료를 떼간다. 유통과정에서 안줘도 되는 4%를 떼이는데 이러면 당연히 유통비용이 늘어난다. 유통비용을 줄여야 더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상식인데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은 상식을 뒤엎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어떻게 바꿀까?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 개설자인 대구시는 '불합리한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대구시는 지난해 1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 활성화방안을 위한 용역을 발주, 결과보고서까지 받았다.

이 보고서를 보면 '시장도매인제'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 법인→중도매인을 거치는 이중 유통구조가 아닌 농민이 바로 시장도매인이라는 새로운 법정(시장도매인제도는 이미 제도화 된 상태) 거래주체들에게 직거래하게 만드는 제도 도입이 이제는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불필요한 유통구조를 없앨 경우, 농민들에게는 더 많은 이익을, 소비자들에게는 더 싼 값에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한 서울강서도매시장의 사례를 분석해 봤을 때, 경매를 했을 경우보다 시장도매인제를 활용하면 농산물 t당 유통비용이 94만1천원이나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단계를 하나 줄이자 획기적인 유통비용 절감이 시현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인들은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은 공간이 절대 부족해 새로운 유통채널인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기 어렵다"며 '시기상조론'을 내세우고 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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