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약이 되는 의료상식] 야누스의 얼굴, 선택진료비

종합병원, 특히 대학병원에 가면 '선택진료비'라는 것이 있다. 이른바 '특진비'다. 말 그대로 의사를 선택해 진료를 받을 경우 추가로 내는 비용이다. 이는 '환자나 보호자는 치료를 받고자 하는 의사를 선택해서 진료를 요청할 수 있다'는 의료법에 의거하고 있다. 선택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의사는 의사면허 취득 후 15년이 지난 치과의사나 한의사, 전문의 자격을 딴 뒤 10년이 지난 의사, 대학병원이나 대학부속 한방병원의 조교수 이상인 경우이다.

대학병원은 보통 이들 의사 중 법에 정한 80% 안에서 선택진료비를 받는 의사를 지정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학병원 교수 중 대부분이 선택진료비를 받는 의사이고,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 상당수도 선택진료를 원한다는 것이다. 대구 한 대학병원에 물어보니 선택진료 환자(입원 기준) 비율이 60%가 넘는다고 한다. 대학병원에 가는 주된 이유가 그 분야의 권위 있는 전문의로부터 특별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교수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선택진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력이 짧은 의사(전임의)나 레지던트에게 일반진료를 받으려고 대학병원에 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처럼 너도나도 모두 선택진료를 하다보니 사실 선택진료의 본질적인 의미가 퇴색해 버렸다. 선택진료가 선택진료가 아니라 '보통' '당연' 진료가 돼 버린 것이다. 병원비가 많이 나오는 고액의 환자일수록 선택진료에 따른 부담이 훨씬 더 크다. 진찰, 회진, 검사, 마취, 영상진단, 방사선 치료, 처치, 수술 등 선택진료 항목이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진료를 없애자는 얘기까지 나오는 등 논란이 일었고, 정부가 선택진료제도개선위원회까지 만드는 등 개선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선택진료는 계속되고 있다. '필요악'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논란이 없진 않지만 현실적으로,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것이다. 선택진료가 무의미해 보이지만 가벼운 증상의 환자들이 3차 의료기관으로 몰리는 현상을 막아주는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다 선택진료비는 고가의료장비 구입이나 시설 투자 등을 통해 다시 환자들에게 돌아간다는 게 병원 관계자들의 얘기다. 일반 의원이나 중소병원과 달리 대학병원은 진료외에도 연구와 교육에도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

크게 보면 선택진료비가 의료의 질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중환자들을 주로 진료·치료하는 곳이 대학병원인 만큼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서 선택진료비는 '야누스'의 얼굴이다. 환자 입장에선 분명한 진료비 이중 부담이고, 병원 입장에선 의료수가가 낮은 현실에서 필요하고 어쩌면 당연히 받아야 하는 대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호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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