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신화에 잠의 신 히프노스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가 쌍둥이 형제로 나온다. 잠을 죽음과 비슷한 현상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잠은 외부로부터 자극이 차단되고 반응이 없는 상태이긴 하지만 다행히도 회복이 가능한 상태다. 사람은 보통 일생의 30~40%를 잠으로 보낸다. 눈을 감고 쉰다고 해서 잠을 대신할 수는 없다.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아주 복잡한 과정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고도의 '생리적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계, 잠'을 해부해 보자.
◆잠자지 않으면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답은 '모른다'이다. 이유는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쥐를 대상으로 잠을 자지 못하게 한 결과, 2, 3주 뒤 모두 죽었다. 또 쥐에게 깊은 수면이 아닌 꿈꾸는 잠만 골라 못자게 했는데도 4~6주 뒤에 죽었다. 사람에게 적용이 가능하다면 기간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쥐 실험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에디슨이 잠의 적이라고?
잠에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위인이 세명 있다. 바로 토머스 에디슨과 라이트 형제.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하면서 인류의 잠자는 시간은 1시간 정도 줄어들게 됐다. 그리고 24시간 교대 근무가 가능해져 불면증 환자를 양성하게 됐다. 또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발명해 인류가 시간대를 넘나들면서 여행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시차 적응과 관련된 불면증 환자가 많이 생겼다.
◆태양은 수면제다
사실 인간의 잠은 24시간 주기에 맞춰져 있지 않다. 태양빛이 없는 곳에서 산다면 하루는 25시간에 가깝다.동굴에서는 31일을 30일로 살게 된다. 지구의 자전 주기와 다른 인간의 신체 주기를 24시간으로 맞춰주는 것은 바로 태양빛이다. 태양은 또 수면제를 만들어준다. 태양이 눈을 통해 들어오면 우리 몸에서는 그 빛을 원료로 해 천연 수면제인 멜라토닌을 만든다. 불면증 환자에게 빛을 쬐도록 권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잠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요즘은 잠을 4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가장 얕은 수면 단계인 제1단계 수면과 그 다음 얕은 2단계, 깊은 수면 상태인 서파 수면, 그리고 꿈꾸는 수면 단계인 급속안구운동기다. 1단계에서 서파 수면으로 갈수록 근육의 긴장도가 풀어지고, 느린 뇌파 비율이 높아진다. 또 숨쉬기, 심박동 등이 조금씩 늦어지고 눈동자의 움직임은 거의 없어진다. 한마디로 신체가 편안해지는 상태다. 그러나 급속안구운동기가 되면 뇌파와 심박동, 호흡이 모두 빨라진다. 또 눈동자의 움직임도 빨라지는데,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잠잘 때 근육이 마비된다?
급속안구운동기의 경우 흥분돼 있지만 근육은 거의 마비 상태다.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꿈 중엔 악몽이 많은데, 악몽을 꾸다 같이 자고 있는 아내나 남편, 자녀를 때리거나 꿈 속에서 도망가기 위해 침대에서 뛰어 내릴 경우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급속안구운동기에도 근육의 힘이 빠지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렘수면 행동장애' 환자다.
◆미인은 잠꾸러기? NO, 키다리는 잠꾸러기!
보통 성인의 잠은 90~120분 간격으로 일정한 사이클을 가지는데 하룻밤에 4~6회 정도 반복한다. 첫번째 사이클의 특징은 깊은 잠인 서파수면 비율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반면 꿈꾸는 잠은 아주 짧아서 1~5분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깊은 잠이 꿈꾸는 잠보다 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장기엔 깊은 잠잘 때 성장호로몬의 분비가 가장 왕성해진다. 미인은 잠꾸러기가 아니라 키다리가 잠꾸러기인 셈이다. 정상인의 경우 잠들고 1시간 내에 꿈꾸는 잠을 자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갓난아기가 잘 자기를 바라면 나쁜 부모?
갓 태어난 신생아는 하루 16~18시간을 자는데, 이 중 반 이상이 급속안구운동기, 즉 꿈꾸는 잠이다. 반면 깊은 잠이 없다. 또 잠을 자도 오래 자지 않고 길어야 3, 4시간 자고 깬다. 아주 중요한 생리적 현상 때문이다. 갓난아기는 체온을 유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자야 하는 반면 비축된 영양분이 없기 때문에 자주 깨서 모유를 먹어야 한다. 갓난아기가 밤에 깨지 않고 잘 자기를 바라는 엄마는 아주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그 생각을 버려야 한다.
◆연령대별 평균 수면 시간
신생아는 하루 평균 16~18시간, 첫돌이 지난 아기는 14~15시간 정도 잔다. 성인과 비슷한 잠의 형태를 갖는 시기는 만 4세가 지나면서부터다. 미취학 아동은 12시간, 초교생은 보통 하루에 10시간 정도 자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차 줄어들게 된다. 10세 중반 경우 8~9시간, 성인은 7.5~8.5시간 정도 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의 경우 수면 부족이 심각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고3의 경우 수면시간이 하루 5시간도 안된다는 통계도 있다. 첫돌이 지나면서 깊은 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깊은 잠은 점차 줄어들게 돼 노인이 되면 더 이상 깊은 잠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신체에 노화가 있듯 잠에도 노화가 있는 것이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도움말·서완석 영남대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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