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섶이 열린 채 피 묻은 흰 가운을 날리며 '생사기로'에 처한 환자들 사이를 바삐 움직이는 의사들의 일상을 다룬 미국 드라마 ER의 주무대이면서, 화급을 다투는 사이렌 소리를 내며 질주하던 앰뷸런스가 마지막에 예외 없이 도착하는 곳인 종합병원 응급실(Emergency Room=ER).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상대로 보다 짧은 시간 동안 Air way(기도확보), Breathing(호흡유지), Circulation(혈액순환)을 통해 꺼져가는 생명을 붙들어 놓아야 하는, 이른바 A'B'C는 응급실 의사들에겐 기초적인 처치법이다.
최우익(40) 교수는 계명대 동산의료원 응급실의 사령탑이자 1995년 계명대 의대가 응급의학과를 신설하면서 바로 전공의 과정을 밟아 지금까지 13년째 응급실만을 지켜온 ER맨이자 지역에서 응급의학 1호 의사이다. 이전 지역 의과대에는 응급의학과라는 임상학과는 없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것도 응급환자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신을 돌봐야 한다는데 매력을 느껴 응급의학과를 지원했습니다." 임상학과가 더욱 세분화되는 추세에 최 교수는 나름대로 응급의학에 대한 정의를 내려, 그때까지 불모지나 다름없는 생소한 과를 선택했다. 응급환자들은 자신의 질환을 어느 과에서 진료가 가능한지도 모른 채 무작정 응급실을 찾게 되는 것이 다반사. 하루에도 심장이 멎은 채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여러명에 이르고 노령에 만성질환이 악화됐거나 각종 사고와 독극물 중독 등'생명의 분초'를 다투는 환자들이 줄지어 80~90명선이다.
"심근경색 등으로 심장이 정지하기 직전, 생명의 펌프가 가냘프게 팔딱거리는 심실빈맥이 올 때 의사의 심장도 덩달아 뛰는 건 금물이죠. 심전도가 가늘게 지그재그를 그려가는 심실세동환자의 경우 전기자극 등을 통해 빨리 세동을 없애줘야 살 가망이 그만큼 커집니다." 세동을 없애는 처치가 1분 늦어질 때마다 생존 가능성이 10%씩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개 심정지 위험환자는 119 연락과 빠른 심폐소생술, 응급실로 가는 중의 조기 제세동 및 도착 후 전문심폐소생술까지의 4단계가'생존의 고리'로서 무척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응급의료체계의 개선, 의료장비의 발전, 응급의학과적인 의술의 축적은 필수적인 사안이며 최근 10년 새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이런 생존의 고리가 유기적으로 연계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최 교수는 응급실에 있을 때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응급환자 처치에 관한 한 그의 머리 속엔 한 뼘 정도 두께의 응급의학 매뉴얼이 오롯이 들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30~40명의 응급환자가 누워 있어도 중'경증환자를 직감적으로 분류, 진단 알고리즘에 따라 치료순서를 밟아가는 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군의관 시절을 포함해 13년 동안 계속 응급실에만 있다보니 심전도 그래프만 한 번 훑어봐도 환자의 증상과 향후징후를 파악, 응급의 정도를 알 수 있게 되더군요." 그는 생사기로에 있는, 응급실 속어로'폭탄'이라고 불리는 환자 가까이 가면 팽팽한 긴장감으로 인해 직감적으로 공기부터 달라진다.
꺼져가는 생명을 붙잡아두는 일도 중요한 응급처치이지만 일단 응급상태가 끝난 환자를 해당 임상과로 옮겨 제대로 된 전문치료를 받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속한 수술이나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입원이 지체될 때 병원 원무팀에 행정조치를 지휘하고 지역 응급의료체계의 긴밀한 연락체계망을 구축하는 것 또한 응급의학과의 몫이다.
6명의 전공의와 9명의 인턴이 최 교수의 지휘 아래 24시간 돌아가는 동산병원 응급실은 전국 428개 병원을 대상으로 한 '2007 응급의료기관 평가'에서 지역응급의료센터 중 최고 점수를 받았다.
시설'인력'장비 등을 포함해 모든 환자의 바이탈 사인이 실시간 전송되는 국가응급정보망(NEDIS) 통계에 이르기까지 수십가지에 이르는 평가항목에서 최 교수팀은 특히 중증환자에게 얼마나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고 있느냐는 항목에서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응급의학과는 기본적으로 환자를 제일 먼저 보듬을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4개월 전에 교통사고로 전신장애를 입은 환자를 각 과에서 치료를 미루는 바람에 직접 의학서적을 뒤적이며 치료를 할 수밖에 없었던 적도 있습니다." 저서로는'최신응급의학(공저)과'휴대용 응급처치카드'가 있으며 20여편의 응급의학관련 논문이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 프로필
△1994년 계명대 의과대 졸업 △94~99년 계명대 동산의료원 인턴 및 응급의학과 전공의 △98년 미국 펜실베니아 의대 허쉬메디컬센터 연수 △2002~2004년 세강병원 응급의학과장 △2004~현재 계명대 동산의료원 응급의학과장 및 주임교수 △대한심폐소생협회 주임강사 △대구시지역응급의료위원회 위원 △대구시구급대책협의회 위원 △대한응급의학회 대구경북지회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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