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다국적 농부들과의 추억

▲ 함께 했던 워킹홀리데이메이커들과의 저녁 휴식시간. 맨 앞쪽이 김효주씨.
▲ 함께 했던 워킹홀리데이메이커들과의 저녁 휴식시간. 맨 앞쪽이 김효주씨.

나는 2년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하여 어학연수와 여행을 겸해 갔다가 올 1월에 귀국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감자를 보면 나는 지난해 8월 호주에서 감자 캐기 농부가 되었던 일이 생각난다.

나를 포함한 몇몇의 한국인, 그리고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워킹홀리데이메이커들은 다국적 임시농부(?)들이 되어 감자 캐기에 한창이었다. Potato picking이라는 이 일은 특별한 시스템도 기술도 없이 그저 허리를 숙여 감자를 캐면 되는 일이었고 자신이 수확한 양만큼 돈이 차등 지급되는 능력제 일이었다. 처음에는 농장체험이라는 거창한 의식에 휩싸여 일을 시작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일의 결과는 참담할 정도였다. 얼굴은 흙투성이였고, 땀이 흘러 비맞은 듯 온몸이 축축했으며, 한참 후 밀려오는 허리의 통증은 아찔할 정도로 쑤셔왔다. 하지만 쉬엄쉬엄 일하는 것이 성격상 잘 맞지도 않았고, 하루라도 돈을 더 벌어 호주를 자유롭게 누비고픈 여행 욕심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비단 나만이 아니라 다른 한국인들도 여행비와 어학연수비용 등의 목적이 있었기에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감자 픽킹에 정열(?)을 쏟았다. 게다가 다른 외국인들은 감자를 던지며 장난을 치거나 좀 지치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긴긴 휴식시간을 가지기 일쑤였으니 성실하다 못해 미련해 보일 정도로 일하는 한국팀과 뚜렷한 비교대상이 되곤 했다.

며칠 후 그런 광경을 내내 지켜본 한 호주인 농부가 어느날 나에게 물었다."너네들 한국에서 농부였느냐?"웃음이 터져나왔으나 충분히 공감할 오해였다. 쉬지도 않고 감자상자를 하루에 수십 개 만들 정도이니, 분명 농부가 아니고선 그럴 수 없다고 판단했을 터이다. 잠시 후 나의 직업을 전해들은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도대체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 되지 왜 여기까지 와서 이 더위에 감자나 캐고 있느냐?"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감자를 너무 좋아해서'라고, 사실 감자는 그때도 지금도 싫어한다. 단지 장황한 이유만이 내 진심을 제대로 표현할 것 같았는데, 그렇게는 유창하게 영어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기에 대충 임기응변으로 넘긴 것뿐이었다.

그렇게 싫어하는 감자지만 지금까지도 그 감자밭을 잊을 수가 없다. 오래오래 기억될 행복한 방랑의 기간 중에, 육체적 고통이 그리도 만족스러웠던 수확의 기쁨이란 것을 알게 해준 시간이었으니까. 그립다. 펼쳐진 감자밭에서 나오는 특유의 흙내음이.

김효주(대구 달서구 상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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