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초보운전 시절을 겪는다. 당신이 카레이서급 운전자라 할지라도 한때는 분명 초보였다. 시속 70~80㎞로 질주하는 차량이 가득한 도로에서 초보운전자들은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다가는 경적소리가 울리고 욕설이 날아들기 일쑤다. 초보운전자에게 한국의 도로는 정글이다. '안전 제일! 안전 최고'라고 항변이라도 해보고 싶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초보운전 시절에 겪은 황당한 경험담들을 모아봤다.
◆운전대만 잡으면 긴장이 돼
초보운전자들에겐 주차하는 것도 차를 빼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최근 30대 직장인 김모(여)씨는 차를 샀지만 주차장에서 차를 빼지 못해 며칠간 택시를 타고 출퇴근해야 했다. 운전면허증을 딴 뒤 바로 차를 산지라 운전이 서툴렀던 탓이다. 김씨는 "주차된 차량이 많아서 며칠간 차를 세워뒀다. 혹시라도 차를 빼다가 다른 차량과 부딪칠까 겁났다"고 했다.
전경숙(29·여)씨는 운전연수를 하다 병원 신세를 졌다. 연수받기 시작한 지 며칠 안 된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오른팔이 너무 아팠다. 글쓰기조차 힘들어 참다 참다 의사를 찾았다. 혈액순환 문제인가 싶어 내과에 갔더니 신경외과로 가보라고 했다. 의사는 스트레스성이라고 했다. 그제야 전씨는 수동 변속기 차량을 몰면서 기어를 바꾸는데 용을 너무 많이 써서 그랬음을 알아챘다. 최모(27)씨는 초보 시절 친구 차를 빌려 탔는데 핸드브레이크를 내리지 않고 1시간 30분 동안 주행했던 것을 기억했다.
수동 변속기 차량은 초보운전자들에겐 부담스럽다. 일시 정차했다가 출발할 때 가속페달을 적절히 밟지 않으면 차가 뒤로 밀릴 수 있는 경사진 언덕길은 초보운전자들에게 공포의 장소다. 20여년 전 초보시절 윤모(54)씨는 대구역 지하도에서 중앙로로 진입하는 경사진 도로에서 우회전만 계속했던 경험담을 털어놨다. 중앙로로 진입할 수 있는 직진 신호가 걸릴 때까지 시민회관 쪽으로 계속 우회전해서 뺑뺑 돌았다는 것이다.
초보운전자들은 차에 문제가 생겨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유모(47)씨는 초보시절 시내에서 신호대기하려고 차를 일시 정차했는데 조수석 앞쪽으로 둥그런 물체가 굴러가는 것을 발견했다. 동승자들이 "야! 저게 뭐야?"라고 했지만 알고 봤더니 자기차의 오른쪽 바퀴였단다.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엔 그저 웃어넘길 뿐이다.
◆아찔했던 사고도 이젠 추억
초보운전의 황당한 경험은 이뿐만 아니다. 주차해 놓고 볼일 보고 왔는데 차가 어디에 있는지 못 찾아 한참을 헤맸다는 얘기, 고속도로에서 차로 변경을 못한 나머지 톨게이트를 지나쳐 수십km를 더 달려 다음 톨게이트에서 회차했던 경험담, 차를 주차하면서 경사진 곳인 줄 모르고 핸드브레이크를 잠그지 않고 내리는 바람에 차가 뒤로 굴러 다른 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냈다는 이야기 등 끝도 없다.
초보운전자들한테 생기는 사고는 다양하다. 1990년대 초 새 차를 구입한 이모씨는 가족들과 함께 달성군 유가사에 다녀오다 차량 구입 10일 만에 차가 뒤집히는 큰 사고를 겪었다. 좁은 농로를 달리던 중 마주 달려오는 봉고차를 피하려다 생긴 사고였다. '살짝 지나가면 되겠지' 싶어 계속 차를 몰았기 때문. 이씨는 "눈을 떠보니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더라"고 아찔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장롱 면허' 20년 만에 운전대를 잡은 한 아주머니는 딸을 출근시키기 위해 핸들을 잡고 아파트를 나섰다. 도로에 차도 없는 상황에서 핸들 방향만 틀면 됐는데 그만 운전대를 그대로 놔둔 채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페달을 밟아 버렸다. 그대로 돌진한 차는 인도를 넘었고 은행나무에 충돌했다. 범퍼와 전조등은 깨졌고 타이어도 터졌으며 부러진 나뭇가지가 행인을 때려 쓰러뜨렸다. 아주머니의 일가족은 나뭇가지 사이에 낀 차를 손으로 들다시피 해서 빼내야만 했다.
초보운전자는 사고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 김모씨는 사고를 당하고도 얼떨결에 돈을 물어주었다. 10여년 전 교차로에서 신호를 대기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차량을 뒤에서 들이받았다. 상대방의 과실이지만, 사고를 낸 운전자는 오히려 김씨의 차량이 1·2차로 위에 겹쳐져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하도 당황해서 상대방이 차로 위반이니 벌금·수리비 이야기를 하기에 3만원을 건네 주었다"고 했다.
◆그땐 그랬지
요즘엔 도로주행 시험이 필수지만 1997년 이전에는 이 제도가 없었다. 초보운전자가 나름대로 주행연습을 한다고 도로에 나왔다가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원 공모(39·여)씨도 도로주행 연습 때문에 운전을 포기한 사례. 공씨는 1995년쯤 친구의 차를 타고 주행연습에 나섰는데, 문제는 차량 변속기가 수동이었다는 점. 차가 일단 출발하면 변속을 해야 하지만, 차가 출발한 뒤 네거리를 지날 때까지 그렇게 하지 못해 1단으로만 달렸다. 핀잔을 들은 공씨는 이날 이후로 운전을 아예 포기했다.
교통경찰과 관련해 경험담도 있다. 임모씨는 '지인의 사례'를 들려 주었다. 그의 지인이 하루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단속에 걸렸다. 당시는 단속된 운전자가 경찰에 무마용으로 돈을 건네는 일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초보운전자인 임씨의 지인도 그렇게 하면 된다는 소리를 들은지라, 운전면허증 밑에 5천원권 한장을 깔아 건넸다. 면허증을 돌려받고 차를 몰고 가는데 경찰이 사이렌을 울리며 다시 따라왔다. 의아해 하는 지인에게 경찰은 다시 5천원을 받아 갔다. 알고 보니 경찰이 면허증 밑에 붙은 지폐를 못 빼고 그냥 돌려줬던 것이었다.
오늘도 도로에는 수많은 초보운전자들이 다양한 사건과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그곳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은 때로는 '초보운전, 나도 내가 무서워요!'라는 문구로 고백하기도 한다. 때로는 '깜짝이야~ 빵빵거리면 놀랄 거예욧!' '무서워~이, 겁주면 싫어!'라며 애교를 떨기도, 그리고 '당황하면 후진합니다' '운전은 초보, 성질은 람보, 건들면 개'라며 협박을 하기도 한다. '초보운전' 딱지만 보면 난폭·과격 운전을 일삼는 못된 선배 운전자들에 대한 항변인 셈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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