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깡학원 문강명 대표이사의 '성공 스토리'

학원 강사 되려 대학 진학…한 10년 해보니 이 업종에도 자신감

학원이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축구단이 있다. 문깡FC가 그것이다. 유명세가 꽤 높은 문깡학원이 운영하는 축구단이다. 문깡FC의 주장은 이 학원의 대표 문강명(47)씨. 그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독특한 외모와 자유분방한 행동의 소유자로 소문 난 사람. 그는 어떤 수완으로 문깡학원을 일궈냈을까. 또한 얼마나 축구광이기에 축구단까지 운영할까. 그와의 인터뷰는 16일 대구 수성구의 한 일식집에서 이뤄졌다. 그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채 배낭 메고 나타났다. "운동 다녀 오셨나봐요?" "아닙니다. 출근 복장입니다. 평소에는 트레이닝복인데 오늘은 그래도 청바지 입은 겁니다." 박박 민 머리에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 언뜻 보기에 '떴다 김샘'의 김샘을 닮은 것도 같았다. 본인은 그리 선뜻 동의하지 않았지만.

◆대학, 4번을 가다

-대학을 4군데를 다녔던데요. 이유가 뭐였습니까?

"방황이었죠. 당시 저는 삶에 대한 뚜렷한 목표의식이나 철학 같은 게 없었어요. 1981년 영남대 법대에 입학했다가 1년 만에 그만두고, 군대 가기 전 경희대 임업과에 합격했는데 학교를 안 가고 바로 입대했죠. 제대한 후 서울대 사범대 떨어지고 한국외대 중국어과에 입학했어요. 학교 다니며 방학 때 아르바이트로 목수일을 했는데 급성 류머티스 관절염이 온 거예요. 그래서 대구 내려오게 됐고 학교를 포기했죠. 몸이 조금 나아지니까 친구들이 그래요. '너는 재미있고 명쾌하게 가르치는 데 재능이 있으니까 영어교육과에 가라.' 1990년 10월 3일이었는데 학력고사 딱 53일 전이었어요. 그렇게 영남대 영어교육과에 91학번으로 들어간 거죠. 제가 10년 동안 해낸 가장 멋진 일이라고는 군대 3년을 무사히 마친 것밖에 없었어요."

-학원 강사를 시작한 게 그 즈음인가요?

"저는 학원 강사를 하기 위해서 대학에 갔거든요. 우연히 토플문제를 술술 푸는 저를 본 선배가 학원에 소개해 주더라고요. 제가 여러 대학을 들어가면서 '수학의 정석은' 17번, '성문종합영어'는 20번을 봤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도가 탁 트이더라고요. 제가 사람 앞에 서면 재미있는 소리를 잘했습니다. 그런 끼가 발동한 거겠죠. 1991년 처음 학원 강사로 나설 때는 '이 학원이 장사가 잘 안 되니까 개그맨을 데리고 왔다'는 소리도 들을 정도였어요. 1분 강의하고 10분 웃기고 그러니까. 첫 월급이 55만원이었는데 1년 만에 400만원으로 뛰었고 다시 1년 뒤에는 월 1천만원을 벌었죠. 그리고 1996년 문깡학원을 시작했습니다."

-왜 '문깡'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까?

"제 이름이 문강명이잖아요. 군대 시절 상병이 되니까 군기가 풀리는데 관등성명을 '상문깡~' 이런 식으로 댔더니 어느새 별명이 됐더라고요. 학원 이름을 지을 때 고민 많이 했는데 처음에는 거부반응을 일으켜도 나중에는 괜찮을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죠."

◆아직 난 성공한 게 아니다

-문 대표는 영어 교육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도 아니고, 유학파도 아니잖아요. 이 점을 문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방 끈 길다고 공부 잘합니까? 정주영씨는 좋은 대학 나와서 현대를 세웠나요? 영어를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릅니다. 저는 지금은 강의를 안 하지만 여전히 간직한 프라이드 중에 하나가 무슨 책이든 하나 주고 어디를 가서 가르치라고 해도 학생들의 레벨을 금세 파악하고 맞춤 강의를 할 자신이 있다는 겁니다."

-전국적으로 지점이 24곳이나 되는데 사업을 확장하는 이유가 뭡니까?

"지금 문깡학원 원생 수가 1만3천명쯤 됩니다. 매출은 240억원이 넘고요. 대구에서는 가장 큰 학원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죠. 이제 저 개인의 회사가 아니거든요. 직원들이 청춘을 여기에 바쳤으면 더 크게 나아가려는 욕구를 충족시켜줘야죠. 아직 제대로 못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10년 동안 수업료를 낸 것이고, 이제야 교육업종에 대한 자신감이 생깁니다."

-실패의 경험도 있습니까?

"3년 전에 캐나다 밴쿠버에 문깡학원 지사를 차렸어요. 한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해외연수를 가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있잖아요. 그 학생들에게 연수 비용을 빌려주고 한국에 돌아오면 문깡학원에 취업해서 일하면서 그 돈을 갚아나가는 식이었는데 아이디어는 좋았죠. 그런데 한번 하고 나니 모집이 안 돼요. 대구 지역에 한정되다 보니 타 지역 사람들이 외면한 거죠. 재정적으로 손해도 봤고. 배운거죠. 함부로 까불면 안 된다는 걸."

-남들에게 개인 연락처를 잘 안 가르쳐 준다면서요?

"제가 그렇게 사회적인 동물은 아닌것 같아요. 하하.(문깡학원은 동종업계에서 '욕' 많이 먹기로 유명하다.) 남들 신경을 안 쓰는 게 학생들은 학습 효과를 보고 학부모들은 만족하거든요. 10명 중에 7명만 좋은 얘기를 해도 회사 안 망합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면 그냥 인정해주면 됩니다. 세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살아가는 거니까요."(그는 "이용당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직영 원칙을 깨고 오랜 직원과 동업 형태의 지점 2곳을 냈다가 소송에 휘말렸고 최근에야 투자금을 돌려받는 판결을 받았다.)

-수도권 학원의 지방 진출이 거센데 문깡학원이 살아남는 비결이 뭡니까?

"소비자는 냉정합니다. 10년 전에 서울에서 이화학원이 내려왔을 때 우리도 원생 3분의 2가 나갔어요. 그런데 지금은 별 영향이 없습니다. 수도권 학원들은 유학이나 연수를 다녀온 잘하는 아이들을 특목고에 보내면서 이름이 났거든요. 수업도 잘하는 애들 위주고. 그런데 대구는 영어를 잘 못하는 아이부터 레벨이 세밀하게 짜여 있습니다. 성장 배경 자체가 달라요."

◆축구에 미치다

-최근 매일신문 1면 하단에 '문깡FC' 단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냈던데요.

"학원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강사들과 함께 공을 찼어요. 조직화된 건 4년 정도 됐죠. 평화정공하고 축구를 했는데 잘하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보니 11명이 전부 축구부 출신이래요. 우리는 축구부가 호주 출신 외국인 강사 1명밖에 없었거든요. 열받아서 우리도 뽑으라고 했죠. 2년 전부터 뽑았는데 지금은 9명이 축구부 출신입니다. 올해도 2명을 더 뽑을 계획이고요."

-축구를 왜 그렇게 좋아하시는지요.

"축구나 사업 모두 팀스포츠입니다. 대표이사가 아무리 잘나도 혼자 다 못합니다. 우리 회사 직원이 비정규직을 포함해 400명이 넘거든요. 또 회사를 더 키우려면 혼자 하면 안 됩니다. 제가 자꾸 축구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스스로 최면을 거는 거예요. 제가 독주를 할 수 있는 스타일이거든요. 팀 스포츠를 강조하면서 독선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세뇌하는 거죠."

◆영어에 왕도는 없다

-집에서 아이들 영어 교육은 어떻게 시킵니까?

"영어로 말하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일곱살, 세살 남매를 두고 있는데요. 첫애가 26개월 때 호주에 6개월 동안 데리고 갔는데 아이가 처음에는 한마디도 안하더니 3개월이 지나니까 영어로 말을 해요. 한국에 돌아와서 집에서는 거의 영어로 대화를 했죠. 대구 국제학교에 입학한 뒤로 집에서는 영어 교육을 안 합니다. 둘째 아이는 아예 영어 공부를 안 시킵니다. 어차피 크면 오빠랑 영어로 대화해야 하니까. 이런 방식은 일반 가정에서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유치원 2년 다니며 1천만원씩 들이느니 그 돈으로 외국에서 1년 살다오는 게 제일 빠릅니다. 다녀와서 잘 유지만 하면 평생 먹고 살 영어가 되는 거죠. 일단 어릴 때부터 스피킹이 안 되더라도 영어 듣기에 많이 노출시켜야 됩니다. 되도록 영어를 쓰고."

-우리 영어 교육에서 뭐가 잘못됐다고 봅니까?

"영어 공교육이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못 고치는 게 제일 아쉬운 거죠. 영어를 배우는 가장 큰 목적이 의사소통인데 그게 안 된단 말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바뀌어야 하고 영어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또 말하기 위주의 실용영어가 되어야 합니다. 스피킹이 안 되면서 문법과 단어를 아는 것은 소용이 없거든요. '오렌지'를 '어륀지'라고 표기한다고 해서 영어 교육이 되는 건 절대 아닙니다. 학교 영어 교육이 제대로 되면 영어 잘하는 사람이 늘고, 인프라가 구축되고 장기적으로 효과를 보게 됩니다. 이건 10년 내에 어렵습니다."

-영어 몰입 교육이 사교육 시장을 더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요.

"근본적인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놔도 사교육은 살아남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게 반갑지 않습니다. 제가 밥 먹고 사는 것하고 우리나라가 잘되는 것하고는 별개의 문제니까요. 사교육 종사자 중에 사교육과 공교육이 공존하면 된다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안 되죠. 사교육은 나서면 안 됩니다. 무조건 공교육이 중심이 돼야 합니다."

-앞으로 계획은?

"지금 '문깡북'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재 한권으로 말하기, 쓰기, 듣기를 다 해결하는 건데 중국과 일본, 대만으로 진출할 계획입니다. 지난 10년간의 경험이 매출을 최소 10배 이상 키우라는 교훈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차 문깡학원을 세계적인 영어 교육법인으로 만들 거예요. 중국,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영어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다 진출할 생각입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문강명은?=1962년 경남 고성 출생. 얼굴로 먹고살 팔자는 아니었고, 가난한 형편 탓에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사람 앞에 서는 게 꿈이었던 청년은 10년의 방황 끝에 학원 강사의 길로 들어선 뒤로 승승장구했다. 1991년 대학 1학년 때부터 학원 강의를 시작해 1996년 문깡학원을 열었다. 현재 대구 17곳, 분당 3곳, 제주, 포항, 부산, 울산 등 24개 지점이 있고, 필리핀에 전화 영어 현지 법인 '문깡톡'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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