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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쇠고기 원산지표시제' 강화 첫 날 표정

▲ 22일부터 100㎡(33평) 이상 모든 음식점이 쇠고기 원산지를 표시해야 하는
▲ 22일부터 100㎡(33평) 이상 모든 음식점이 쇠고기 원산지를 표시해야 하는 '개정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가 시행됐지만 홍보부족 등으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날 오후 대구시내 한 식당이 쇠고기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은 채 영업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미국산 쇠고기 개방을 앞두고 100㎡(33평) 이상 모든 음식점이 쇠고기 원산지를 표시해야 하는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가 22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그러나 첫날 업소·당국의 준비 부족으로 이를 제대로 지키는 업소가 거의 없어 제도 정착이 쉽지 않음을 보여줬다.

더욱이 이번에 시행된 식품위생법상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보다 더 강화된 내용의 농산물품질관리법상 원산지 표시제가 다음달 중 시행될 예정이어서 '이중 규제' 논란으로 식당 업주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22일 오후 2시쯤 대구 동구의 한 식육식당. 120㎡여쯤 돼 보이는 음식점에는 손님이 없었다. 식당 벽면에는 소고기 전골, 안창살, 꽃등심, 갈비살 등이 적힌 메뉴판이 걸려 있었고, '주먹시 1만8천원'이라고 적힌 임시 가격표가 눈에 띄었다.

"손님들이 우리집은 한우만 취급한다는 걸 빤히 알고 있는데…, 원산지 표시제를 왜 해야 하지요?"

원산제 표시제가 확대·시행된다는 취재진의 말에 업주 이모(47·여)씨는 난감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씨의 음식점 메뉴판에는 국내·수입산 표시와 고기 종류 표시가 전혀 없었다. 이씨는 "새로 메뉴판을 만들려면 50만원은 든다. 장사도 안 되는데…"라며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쇠고기 전골류를 취급하는 인근 업주는 "원산지 표시제가 강화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우리 같은 작은 가게도 포함되는지 몰랐다"며 "구이용만 해당되는 것 아니냐"고 난처해했다.

취재진이 이날 10여곳의 음식점을 둘러본 결과, 원산지 표시제 확대 시행을 알고 있는 음식점도 있었지만 표시해놓은 곳은 거의 없었다. 상당수 업주는 원산지 표시제가 강화된다는 말만 들었지, 구체적인 표기방법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다. 제도 자체를 모르는 업주도 서너명이나 됐다.

메뉴판에 생선구이, 돼지고기, 갈비살(쇠고기) 등을 적어놓은 남구의 한 음식점 사장은 "쇠고기가 잘 팔리지도 않는데 법이고 뭐고 다 귀찮다"며 "메뉴에서 갈비살을 아예 빼야겠다"고 말했다. 기자가 다음달부터 육개장, 곰탕 등도 원산지 표시 대상이라고 하자, 주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원칙적으로 '쇠고기를 가공한 모든 음식물'이 원산지 표시 대상이다. 소뼈를 우려낸 곰탕이나 냉면 육수도 포함된다. 농관원 경북지원 관계자는 "다음달부터 시행되는 농산물품질관리법령에 따르면 햄이나 햄버거도 대상"이라고 밝히면서 상당수 음식점·가게가 단속 대상이라고 했다.

◆이중규제로 혼란스럽다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에 대한 보건복지가족부와 농림수산식품부의 이중규제도 이 같은 혼란에 한몫하고 있다.

원산지 표시 내용은 구이용, 찜·탕·튀김용 쇠고기 전반으로 동일하지만, 대상면에서 식품위생법은 100㎡ 이상, 농산물품질관리법은 면적에 관계없이 전 음식점으로 정하고 있다. 농식품부 측은 구체적인 원산지 표시 대상 품목과 방법을 다음달 초 공포 예정인 시행령·시행규칙에 정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음식점 업주들은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식품위생법과 농산물품질관리법이 동시에 시행되면 식품의약품안전청과 농관원 모두 원산지 표시에 대해 단속과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법은 시행시기와 표시대상에도 차이가 있어 더 헷갈린다.

농관원 경북지원 측은 "농관원의 독자적인 단속은 7월 중 시행법규 공포 이후에야 가능하겠지만, 이중규제가 되지 않도록 원산지 점검이나 위생 점검을 농관원과 식약청이 따로 분담하는 등의 업무 분담이 있을 것"이라며 "점포 앞 플래카드를 달든, 메뉴판을 고치든 고객들이 원산지를 최대한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음식업중앙회 대구지회 변정열 과장은 "서로 다른 두 기관에서 같은 내용을 다르게 규제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피해는 고스란히 음식업계가 입게 됐다"며 "농관원 단속까지 시행되면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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