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우리는 少年兵이었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도 58년이 지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休戰(휴전)'일 뿐 '終戰(종전)'은 아니다.

이산가족을 만나고 쌀과 비료를 나눠주고 남북지도자가 공항과 영빈관에서 얼싸안아도 여전히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수도 한복판에서 경찰차를 부수고 불태우려는 좌파 의심 세력이 있는 한 '전쟁' 중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전쟁 중인 전 세계 분쟁지역은 우리 말고도 늘 20곳이 넘는다. 그리고 그 전쟁들도 6'25 전쟁처럼 거의 대부분 타 민족끼리나 국가 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닌 동족끼리의 內戰(내전)이라는 비극을 안고 있다. 더 큰 비극은 분쟁지역의 대부분이 가난과 질병, 부패세력 간의 권력투쟁이 뿌리 깊은 피폐한 나라들이며 그런 만큼 어린이와 부녀자의 희생이 크다는 점이다. 21세기 지구촌의 내전과 전쟁 중에서 75%는 속칭 少年兵(소년병)이 참전하고 있다. 14세 이하 철부지에게 무기를 쥐여주고 내전에 동원한다. 줄잡아 30만 명의 소년병이 미얀마, 콜롬비아, 우간다, 콩고, 시에라리온 등 테러국가였던 나라나 내전이 잦은 국가에서 총을 잡고 있다. 콜롬비아 무장 혁명군 경우 소년병의 25%는 少女(소녀) 병사이기도 하다.

강대국 무기 제조업체는 체격이 작은 소년 병사들을 위해 가볍고 강한 소형 무기를 개발, 반군 군벌 등에게 팔아먹는다. 훈련도 모자라고 정규 군인이 되기엔 체력이 허약한 만큼 소년병들의 전투 중 희생은 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프리카 내전국 중에는 지난 20여 년간 2만5천 명의 소년들을 계속 유괴, 무장시켜 총알받이로 내몬다. 내전국 소년병의 3분의 2가 유괴와 같은 강제 동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희망적인 것은 내전을 겪고 난 일부 국가에서는 어린 나이에 전쟁의 비극과 충격을 겪은 그들에게 정신적 치유와 교육, 인도적 배려의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6'25 내전은 어떤가. 당시 우리에게도 소년병은 있었다. 당시 14세 이하 어린 나이에 낙동강 전선에 주로 투입됐던 소년병은 2만4천396명, 그 중 10%인 2천464명이 혈육 한점 남기지 못한 어린 나이에 전사했다. 1만여 명은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생존하신 옛 소년병은 1만1천여 명, 이제 그분들은 모두 칠순의 나이를 넘기신 노병들이다. 당시 전쟁 시작 37일 만에 국토의 92%가 북한군에 점령된 위기 속에 대부분 병역의무도 없으면서도 자발적인 참전으로 총을 들었다. 그러나 휴전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프리카 후진국도 아닌 선진 한국의 옛 소년병들에겐 명예와 애국심에 대한 예우와 보상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순국 소년병을 위한 그 흔한 위령탑(충혼탑)도 없다. 전사자 명부 기록도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현실적인 보훈 혜택도 없다. 단지 구법인 참전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참전 유공자에 해당한다는 법적 지위만 인정해주고 있을 뿐이다. 같은 학생으로 참전했던 재일 학도의용군 수준의 예우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연금 예우에서 보면 8만 원 대 100여만 원이다.

백발의 소년병들은 칠순이 넘은 나이에 새삼 금전적인 예우를 내세우지 않는다. 아직 끝나지 않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휴전 상태로 이어져 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후세에게 구국의 정신과 애국심을 일깨우는 뜻에서라도 반세기 전 소년병들의 구국충정을 제대로 인정해달라는 것뿐이다. 그래야 애국혼이 바로 서고 나라와 軍(군)의 호국 정신이 바로 설 수 있다는 바람인 것이다.

6'25 참전 소년병 전우회란 이름으로 칠순의 소년병들은 17대에 이어 18대 국회에 소년병의 명예선양을 위한 법개정을 요구하는 법안을 다시 제의했다. 노무현 좌파 국회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법안이다. 보훈의 달에 60평생 아무런 보상도 없이 묵묵히 호국의 충정만을 가슴에 묻어두고 왔던 老(노) 소년병들의 오랜 한이 풀려져 이 나라의 미래 청소년들에게 촛불 말고도 애국의 길이 어떤 게 있는지를 일깨워준다면 한결 뜻 깊은 호국의 달이 될 것 같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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