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부모 생각] 지금이라도…

티없이 맑은 얼굴로 환하게 웃는 아이와 사랑이 넘치는 표정으로 감싸안은 아이 엄마의 모습으로 된 그림. 며칠 전 받아든 우편물의 우표다. 누구에게나 '요금별납'의 소인이 찍힌 공식적인 우편물보다는 풀칠을 해서 누군가의 손길이 한번 더해졌을 우표가 붙여진 편지봉투를 받는 기분은 설렘과 반가움으로 가득할 것이다. 우표 제목은 '아이를 키우는 행복한 나라'. 의미심장하다. 뭔가 시사적이었다. 나라 안팎 곳곳에서 우울하고 어두웠던 일들이 가슴을 헤집고 아이들과 관련된 일들로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을 만큼 어수선한 시기였기 때문에…. 굳이 그 우표 한 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내 개인의 정서이지만 그래도 엄마로서의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방편이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 나라'는 없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행복한 나라'에서 아이를 키움으로 행복할 수 있는 풍토와 환경이 유지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첫 아이를 선물 받았을 때와, 학부모가 되었을 때의 그 행복에 겨워 감사해하던 '고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추슬러 보지만, 아이가 커 갈수록 고난도(?)의 긴장과 안개 속처럼 부옇게 흐려 앞이 안 보일 때가 있다.

사실, 최근 아이 성적표 결과에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집착을 벗어난 본래 그 자리'라는 중도(中道)를 지키기 위해선 시행착오가 더 필요한 것일까? 지금이라도, 기다려 줄줄 아는 엄마가 돼야겠다. '단지 좀 늦을 뿐이지 언젠가는 감춰진 가능성을 팔랑거리며 잘 펼쳐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자세로서 대해야지….' '아이를 키우는 행복한 나라'에 사는 우리 모든 부모들의 일상은 수행자가 되라는 듯 주기적으로 반성을 수 없이 요구받는다. 어떤 훌륭한 성직자는 제일 닮고 싶어 하는 존재가 '새'라고 한다. 새는 둥지를 만들고 새끼가 자라나면 미련 없이 집을 떠나 자유를 누린다고 한다. 버리고 털어서 얻은 그 '대자유'는 새의 생태일 뿐 부모입장에서는 적어도 새처럼 비상(飛上)을 할 때까지는 대부분 최선을 다하며 지켜봐 준다. "본래 선한데 사회의 악요인에 물들어간다"며 아이가 갓 태어날 때의 상태 유지를 과제로 삼았던 루소의 주장은 이 시대에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 같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게 서툴렀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만약 우리 주위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다쳐 시큰둥 기죽어 있는 아이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비밀의 화원'으로 데려가보고 싶다. 메리와 콜린 디콘이 나누는 격려와 우정이 마음을 움직이게 할 것이고 친절하고 호기심 많은 '붉은 가슴울새'가 상처를 어루만져 줄 것이다. 초교 6학년 때 교실에서 키우던 '육월선'이라는 화분을 집 앞 베란다에 가져다 두고 지금껏 정이 들도록 물도 주고 보살피는 작은 아이의 건강한 마음 씀씀이와 정서를 보면 뿌듯해진다. 지금이라도, 나는 슬며시 아이가 더 어릴 때 읽었던 '보물섬' '걸리버 여행기' '홍당무'와 같은 도전과 용기,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는 명작들을 식탁 한쪽에 다시 올려다 놓을 것이다. 아이가 행복해 할 거니까.

장인숙(대륜중 2학년 김지헌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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