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염소의 울음이 세상을 흔든다/박완호

새끼 염소가 죽었다.

난 지 사흘 만에 나선 첫 산책길

아카시아 향기에 취해 길을 잃었을까

누구의 귀에도 가 닿지 못한

울음 한 조각 물고

똥통에 빠져 죽은

염소의 검은 등을 밟고

수의라도 덮어 주려는 듯

구더기들 하얗게 몰려든다.

목덜미 털이 벗겨지도록

종일 새끼를 찾던 어미는

모르는 척 허겁지겁 밥그릇을 바닥까지 핥는다.

물기 젖은 염소의 눈길 가 닿는

사발 속 허공

어미 염소의 허기가

세상의 저녁을 흔든다.

첫 연의 '새끼 염소'와 마지막 연 '어미 염소'의 뚜렷한 대비. 새끼의 죽음과 어미의 허기. 새끼를 잃고도 입맛은 왜 이리 단가. 바닥까지 말갛게 핥아먹은 밥그릇에 비친 제 모습. 문득 허기가 부끄러워져 어미 염소는 창자가 끊어지도록 구슬프게 울어댄다.

죽지 않으려면 먹어야 한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사랑하는 이의 시신 앞에서도 국그릇을 끌어당겨야 하는 게 무릇 살아있는 것들의 숙명이다. 새끼 염소의 애처로운 '울음'을 삼킨 '똥통'은 이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의 다른 이름.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런 죽음이 있기에 구더기들의 하얀 허기도 채워질 수 있는 것. 이래저래 허기가 세상을 흔드는 저녁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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