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봉이 김선달의 '대동강물 팔아먹기'와도 같은 얼핏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성업을 이루며 확산일로에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기를 오염시킬 수 있는 권리를 사고 파는 탄소배출권 시장이다. "탄소배출권 시장은 인류가 발명한 단일 상품으로는 사상 최대 히트작이 될 것이다." 이 말은 전 세계 환경관련 금융 전문가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2006년에 300억달러이던 세계 탄소시장 규모가 오는 2010년에는 그 5배인 1천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탄소배출권은 지난 1997년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제적인 기후변화 협약인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제도이다. 정부나 기업들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스스로 줄이도록 유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탄소배출량이 감축 목표보다 적은 기업은 배출권을 시장에 내다 팔고, 감축 목표보다 더 많이 배출해야 하는 기업은 배출권을 시장에서 사서 충당해야 한다.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는 대신에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사업(CDM)에 투자하여 UN으로부터 배출권을 인정받을 수도 있다. 교토의정서에 가입한 38개 의무이행 당사국들은 2008∼2012년 사이에 이산화탄소(CO₂)와 메탄(CH₄)을 비롯한 여섯 가지 온실가스의 총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평균 5.2% 감축해야 한다. 여러 온실가스 중에서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이 전체의 89%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탄소배출권'으로 命名(명명)하게 된 것이다.
탄소배출권은 양날의 칼처럼 우리 경제에 得(득)이 될 수도 있고 失(실)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의 활동을 얽매는 규제인 동시에, 수익과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시장이 세계 곳곳에 생겨나고 있고, 거래 규모도 해마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배출권 거래소는 EU의 주도로 2005년에 맨 처음 설립된 EU-ETS를 비롯하여 영국, 미국, 호주 등 모두 15개가 설립·운영되고 있고, 일본, 홍콩, 중국 등이 거래소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에 온라인 탄소배출권 거래소에서 배출권 거래가 시작되었으며,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배출권거래소 설립에 나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탄소배출권(CER)에 투자하는 사모펀드와 공모펀드가 조만간 출시됨으로써 개인투자자들에게도 투자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5년 후에는 세계 탄소배출권 시장 규모가 원유시장 규모를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1 CO₂t당 20유로(3만원)를 웃도는 가격으로 거래되는 탄소배출권의 가격도 앞으로 더욱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UN의 온실가스 감축 승인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헤지펀드 등의 배출권시장 진출이 더 활발해질 경우에는 배출권 가격의 변동성이 더욱 커질 소지도 없지 않다.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량은 2005년 중 5억9천t으로 세계 9위를 기록했다. 일정량의 국내총생산(GDP)을 생산하는데 소모하는 에너지의 양이 일본의 3배 이상이고 OECD 평균의 1.7배나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정부나 기업들의 에너지와 환경 문제에 대한 대응태세가 너무나 안이하다는 비판을 국제사회로부터 받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에서 우리나라도 결코 비켜 서 있을 수만은 없다. 한국은 교토의정서상의 의무이행 당사국은 아니지만, 지난해 12월에 합의된 '발리로드맵'에 따라 2013년부터는 탄소감축 대열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선진국 기준에 의해 온실가스를 감축할 경우 현재의 배출량의 절반 정도 줄여야 한다.
정부의 계획대로 2005년 수준으로 탄소배출량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2013년에 가면 3억t에 달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100억달러(10조원)를 훨씬 웃도는 탄소배출권을 시장에서 구입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의 부담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탄소배출권 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우리나라가 동북아 배출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탄소거래소를 조속히 설립, 육성하는 한편 국내 기업과 금융회사들도 탄소배출권 거래와 관련된 노하우와 선진 금융기법을 익히고, 전문인력 양성에 주력함으로써 이를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삼기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할 때다.
이화언 대구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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