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가운데 서서 보라

조선 중기 시인이자 문신이었던 白湖(백호) 林悌(임제·1549~1587)가 잔칫집에서 나와 말을 타려는데 하인이 나서며 말했다. "나으리! 취하셨습니다요. 가죽신과 나막신을 한 짝씩 신으셨어요." 그는 도리어 하인을 꾸짖는다. "길 오른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가죽신을 신었다 할 터이고 길 왼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나막신을 신었다 할 터이니 무슨 문제란 말이냐!" -참조:죽비소리(정민, 마음산책)

말을 탄 백호를 오른쪽에서 보면 가죽신을 신은 줄 알고 왼쪽에서 보면 당연히 나막신을 신은 줄로 안다. 흔히 빠지는 함정이다. 한쪽만 보고 다른 쪽도 으레 그러려니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암 박지원은 이를 두고 '천하에 보기 쉬운 것에 발만한 것도 없지만 보는 바가 같지 않게 되면 가죽신인지 나막신인지도 분별하기 어렵다. 그런 까닭에 참되고 바른 견해는 진실로 옳다 하고 그르다 하는 그 가운데에 있다'고 했다.

정확하게 보려면 왼쪽도 아니고 오른쪽도 아니다. 가운데이다. 정면에서 보면 짝짝이 신발임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양편에 서서 자기가 보는 것만이 옳다며 "가죽신을 신었다" "아니다. 나막신을 신었다"고 싸운다.

대한민국은 한바탕 이런 싸움을 막 겪은 터다. 막무가내로 나막신을 봤다는 정부와 가죽신을 왜 나막신이라 하느냐는 국민들의 싸움이었다. 국민들은 활활 타오른 촛불 덕에 '뼈아픈 반성을 한다'는 대통령의 사과까지 받아냈다. 이제 촛불의 열기는 점차 사그라지고 있다. 하지만 불안은 여전하다. 아직 모두가 들떠 있어서다. 여전히 오른쪽에서, 왼쪽에서 한쪽만 보고 있어서다.

촛불을 든 국민들이 차츰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이런저런 분석과 진단이 쏟아져 나온다. 이제는 인터넷과 광장집회라는 감성에서 빠져나와 이성적인 논의로 차분히 되돌아볼 때다. 촛불을 끄려는 의도는 아니다. 촛불 이후를 생각하자는 말이다. 오른쪽도 왼쪽도 아닌 정면에서 사태를 일목요연하게 보자는 말이다.

먼저 대통령의 '뼈아픈 반성'도 단순히 드러난 결과에 대한 반성이어선 곤란하다. 왜 촛불이 켜졌는지, 촛불이 어떻게 이처럼 폭발적으로 번져나갔는지 냉철하게 분석해볼 일이다. 행여 국민들은 가죽신을 보고 있는데 나막신만 계속 봐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국민들은 인터넷을 통해 서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동안 일방통행식 사고로 소통을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곰곰 되돌아봐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소통의 부재'를 지적하고 나서지 않았던가. 여전히 한쪽만 바라보기를 고집한다면 촛불은 다시 거리를 뒤덮을 수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이젠 이성적으로 행동할 때라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모두가 들떠서 감성으로 흐를 땐 아무리 이성의 목소리를 내도 묻혀버리기 일쑤다. 두 달여 계속된 촛불민심의 핵심은 불투명한 인사와 일방적으로 흐르는 정책이었다. 이성보다 감성을 앞세운 촛불이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문제는 너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감성을 앞세우는 동안 이성의 잣대로 목소리를 낸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일을 누가 해야 하는가? 지식인들의 몫이다. 침묵해야 할 자리에서 말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마땅히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쇠고기 추가협상 발표 이후에도 민심이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주말쯤 있을 대폭 개각에 앞서 24일 수습책으로 대통령실 조직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날 단행한 조직개편은 '국민과의 소통' 기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소통은 상호작용이다. 耳鳴(이명)처럼 나는 듣지만 남들은 들을 수 없다거나 코골이처럼 남은 듣는데 나는 들을 수 없다면 곤란하다. 나의 이명에 현혹되지 않고 나의 코골이를 바로 들을 수 있는 그런 인재를 뽑기를 기대한다.

길 왼쪽에 선 사람이 '나막신'을 외치고 길 오른편에 선 사람이 '가죽신'을 외칠 때 누군가는 정면에 서서 짝짝이 신발임을 알려줘야 한다. 이번 개각에선 중간에서 양편을 정확하게 볼 줄 아는 인재를 등용하기를 기대한다. 이쪽도 보고 저쪽도 보면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줄 아는 인재라야 지금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박운석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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