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때 먹은 갈비탕에 들어간 쇠고기는 '한우'일까, '국내산 육우'일까, '수입산'일까?"
한식당을 운영하는 박모(46)씨는 이달초 메뉴판에서 '갈비탕' 메뉴를 아예 빼버렸다. 국내산 육우를 재료로 쓰는데도, '미국산 쇠고기가 아니냐'고 의심스레 묻는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였다. 박씨는 "너무 답답해 전문기관에 국내산 육우와 수입산을 구별하는 방법을 물어봤더니 '없다'고 하더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업주의 말밖에 믿을 수 없으니 손님들의 오해도 이유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국내산·수입산, 구별이 안된다
광우병 파동으로 등장한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 확대·강화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표시'만 잘 되면 쇠고기 불신이 사라질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정작 그 표시가 제대로인지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활용되는 유전자검사법으로는 한우와 비(非)한우 구별만 가능하다. 비한우 중 '국내산 육우'와 '수입산 쇠고기'는 판별할 수 없다. 몇 개월된 소인지도 알 수 없다. 영남대 생명공학부 여정수 교수(한우클러스터 사업 단장)는 "소의 털색깔과 염기조합 확인, DNA분석 등을 통해 한우와 비한우는 구별할 수 있지만, 한국에 들여와 많이 사육하고 있는 홀스타인종 육우(수입 생우) 경우는 미국과 호주 등에서도 사육되고 있어 어느 나라에서 생산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문제는 수입 생우도 국내산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일부 음식점에서 멕시코산이나 뉴질랜드산 등을 '호주산'으로 둔갑시켜 팔거나 아예 '국내산'이라고 팔아도 딱히 꼬집어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소사육을 하는 조재성(27·달성군 논공읍)씨는 "젖소 등 국내산 육우는 한우보다 사료값이 더 많이 나간다"며 "이렇게 키운 국내산 육우가 수입산과 구별이 안돼 불신을 받는다면 차라리 한우 사육으로 업종 전환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쇠고기 유통·단속 기관에서는 "쇠고기 포장재, 구입경로, 구입량과 판매량의 확인 등의 서류 점검을 통해 생산국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신뢰하기 힘들다. 음식점의 구매량과 사용량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산 5t과 호주산 5t을 섞어서 사용한 뒤 '호주산'이라며 원산지 증명서를 제시하면 단속할 여지가 없다.
여 교수는 "국내 축산농가를 지키기 위해 전국 200만마리 소에 대한 생산이력시스템을 통해 소의 출생부터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완벽하게 추적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며 생산이력시스템 확대를 주장했다.
◆한우도 의심스러워?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비한우와 한우를 구별하는 유전자 분석은 3차례 검증절차를 거친다. 1단계는 소의 털색깔을 통해 확인하는 '모색유전자법', 2단계는 '염기조합 확인법(SMP법)', 3단계는 사람에 적용되는 친자 감별법과 동일한 '염기서열분석(MS법)'이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를 하더라도 소의 교잡(품종·성질이 다른 암수의 교배) 등으로 한우의 성질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어 '한우'임을 증명하기가 쉽지않다. 이때는 한우와 국내산 육우와의 구별 문제다. 한 한우 전문가는 "한우와 젖소가 몇 세대를 거쳐 교배될 경우 한우의 형질을 보존하기 어렵다"고 했다.
유전자 검사는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든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 측은 "1·2단계는 검사에만 일주일가량 걸리고 비용은 6만4천원이 든다. 3단계 검사는 10일 이상 걸리고 비용은 24만원가량"이라고 밝혔다.
전국 64만개 음식점에서 사용되는 쇠고기를 대충이나마 검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현재 전국 5곳에 한우유전자분석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달중으로 경북·충북·전북 등 3곳에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8개 분석실이 다 가동돼 연간 총 4만건의 시료를 채취·판별한다 하더라도 전국 64만개소에 달하는 음식점을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때문에 비한우를 한우로 속여 팔거나 생산국가를 바꿔 판매하는 경우가 공공연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식약청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함께 전국 623개 음식점을 점검한 결과 11개 업소가 수입산 또는 국내산 육우를 한우로 허위 표시했고, 14개 업소가 생산국가를 바꿔치기 하는 등 모두 61개소가 적발됐다.
전국한우협회 박성빈 팀장은 "육안으로 봐서는 한우와 비한우, 육우와 수입 소고기를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한우로 태어난 소에 대해서는 한우인증제를 실시하고, 음식점에 대해서는 한우판매인증제를 확대실시해 소비자가 믿고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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