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원산지 표시제' 식당에선 원성

"밥·김치도 원산지 표시를 한다고요?"

25일 오후 대구 중구의 한 음식점. 업주 김모(44·여)씨는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 이야기를 꺼내자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씨는 "젖소고기(국내산 육우)로 끓인 소고깃국이라고 메뉴판에 걸면 누가 사먹겠냐"고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취재진이 이미 밥은 3일 전부터, 6개월 후부터 배추김치도 원산지 표시 대상이라고 하자 "쇠고기만 하는 게 아니냐"며 "도매상에서 중국산 김치를 10kg에 1만원에 사 쓰는데 '중국산'이라고 써놓으면 손님이 다 끊길 것"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원산지 표시 '첩첩 산중'

지난 22일부터 개정 식품위생법에 따라 시행된 원산지 표시제가 초기부터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먹을거리 안전을 위해 원산지를 밝히자는 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장에서는 음식점 업주들의 불만이 높다. "메뉴판 바꾸려면 간판업계만 살판났다"는 비아냥부터 식약청,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구·군청, 경찰 등이 모두 단속에 나서면 장사를 접겠다는 업주도 있었다. 한 업주는 "정부가 협상을 잘못해서 국민 불안을 자초해놓고 음식점만 때려잡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원산지 표시제가 제대로 홍보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취재진이 25일 대구의 일반음식점, 분식점 등 10여곳을 돌아본 결과 밥과 배추김치가 원산지 표시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업주는 한명도 없었다.

농관원은 "농산물품질관리법에 따라 오는 12월 22일부터 식당에서 반찬으로 내놓는 배추김치도 원산지 표시대상이다. 같은 시기에 돼지고기, 닭고기도 표시대상에 포함된다"고 했다.

남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43·여)씨는 "김치볶음밥용 볶음 김치는 중국산을 쓰고, 반찬용 배추 김치는 한국산을 내놓는데 이럴 땐 어떻게 표시해야 하나?"라고 황당해했다. 김밥가게를 하는 김모(52·여)씨는 "도매상에서 국산 김치에 값싼 중국산 고춧가루 양념을 쓰면 어떻게 하느냐"며 "다른 집은 몰라도 우리집은 국산 쌀을 쓴다"고 했다.

농관원 박광훈 담당은 "헷갈려하는 업주들이 많은데 반찬용 김치만 원산지 표시 대상"이라며 "구체적인 표시 방법은 7월 초에 확정된다"고 했다. 그는 "원산지 표시제는 이미 3개월 전부터 홍보를 해왔고, 우려하는 중복 단속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돼지고기, 닭고기는 어떻게?

올 연말부터 돼지고기, 닭고기까지 원산지 표시대상에 포함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농산물품질관리법에 따르면 수입산 생우를 6개월 이상 국내에서 키우면 국내산이 되듯, 돼지는 3개월, 닭은 1개월을 국내에서 키우면 국내산이 된다. 소의 경우 '한우' '국내산 육우' '수입산' 등으로 세분화하지만 돼지, 닭은 '국내산'과 '수입산'으로만 표시돼 소비자들의 혼란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한국음식업중앙회 대구지회 변정열 과장은 "이런 것까지 다 적으려면 초대형 메뉴판이 필요하다"며 "영세한 식당은 음식재료를 도매점 사정에 따라 매번 다르게 쓰는데 원산지 표시를 일일이 어떻게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표시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고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불만이다. 음식점 업주들과 소비자들의 불안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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