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파리가 새가 된다면

'익명의 힘'은 이미 날카로운 칼/살풀이 아닌 조화 찾는 수단 돼야

며칠 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파격적인 행보가 지면을 장식했다. 평소 감색 정장에 붉은 넥타이 차림으로 잘 웃지도 않는 딱딱한 인상의 그가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웹사이트인 인민망(人民網) 사무실을 깜짝 방문했다는 기사다. 노타이 와이셔츠 바람에 채팅하며 활짝 웃는 사진도 실렸다. 호기심 어린, 자신만만한 얼굴이다.

무엇이 이 권력자를 웃게 했을까. '인터넷과 바링허우(八零後'1980년 이후 출생한 세대) 보듬기'에 답이 있었다. 중국 정부는 그간 인터넷을 억누르는 데 골몰했다. 두꺼비 같은 검은색 전화기를 길거리에 내다 놓고 돈 받던 시대가 아닌데도 공산당 지도부의 눈에 거슬리면 아예 통째로 막아버렸다. 2억 명이라는 인터넷 인구와 시시각각 생산되는 여론이 극성스럽다 못해 광적이다 보니 겁먹은 것이다. 한 명이 댓글 한 줄만 달아도 2억이다. 게다가 한쪽으로 쏠린다면 무례하기로 소문난 한국 네티즌이나 2ch(2채널) 같은 일본의 꼴통 게시판은 애당초 상대가 안 된다.

그들은 '인터넷은 칼날의 양면이자 신권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새삼스럽게 그들이 인터넷에 다가서려는 이유는 反(반)서방 애국주의의 교두보라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런 인터넷을 의식해 후 주석은 "(공산당은) 인민들이 인터넷에 표출하는 의견을 무척 중시하고 있다"는 립서비스까지 잊지 않았다. 인터넷을 주도하는 신세대를 지지세력으로 포섭하려는 속셈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법을 안 것일까. 인터넷 권력이 체제나 지도부가 아니라 샤론 스톤과 크리스찬 디오르로 쏠리게 한다면 인터넷 눈치 보기는 대성공이다.

장면이 바뀌어 촛불집회다. "미친 소 OUT"이라는 인터넷 외침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덤벙대던 이명박정부가 혼쭐이 나고 있다. 광우병을 둘러싼 온갖 정보와 괴담이 뒤죽박죽 인터넷을 휩쓸면서 불씨가 댕겨졌다. 뒤늦게 청와대는 인터넷 여론과 괴담을 가르겠다며 온라인홍보 전담 참모까지 마운드에 올렸다. 명박산성이니 국민토성이니 날 선 대립이 무려 두 달을 넘겼지만 광우병을 둘러싼 진실게임은 여전하고 국민과 공권력이 길바닥에서 뒤엉켜 벌이는 가치 충돌은 몸살 그 자체다. 정치권은 촛불 눈치나 보며 헤게모니 싸움으로 허송세월이다. "촛불(힘) 모아 해보자"는 한국판 하람비(harambee'1950, 60년대 케냐 민족운동 구호)에 법과 원칙은 이미 개도 물지 않는 몰가치한 것이 되어버렸다.

한쪽은 적당히 밀어내려고 하고 한쪽은 조심조심 끌어안으려고 한다. 전혀 상반된 방식이지만 공통점은 있다. 인터넷의 메가톤급 위력에 조마조마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편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터넷 권력은 기술이라는 포장을 교묘히 덮어쓰고 있어 일일이 견제하기도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익명의 힘은 이미 날카로운 칼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 칼은 권력을 향하고 새로운 권력을 요구한다. 기성 미디어를 찌질하고 허접한 존재로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조중동이 언론이면 파리는 새다"고 억지 부려도 말리기 힘들어진다.

중국식이든 한국식이든 부정적인 인터넷 쏠림 현상이 과할수록 그늘도 깊어진다. 잘 다독여 보듬으면 든든한 뒷배가 되지만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간 무차별 공격에 만신창이가 된다. '삼양'은 뜨고 '농심'은 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터넷은 21세기의 역사적 선택들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아니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논리처럼 인터넷이 '유토피스틱스(utopistics'실제 가능성이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한 행동)'를 실현하는 수단이 되도록 과학과 도덕, 정치학으로부터 우리가 배우는 바를 조화시키는 것이 해법일까.

인터넷을 다루는 후진타오의 방식이 맞을지, MB의 방식이 맞을지 아니면 둘 다 틀릴지 지금 판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계속 세상이 바뀌고 익명의 힘이 신세계를 창조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모두가 인터넷이 벌이는 굿판을 지켜보고 있다. 제발 解寃(해원)이나 살풀이가 아니기를.

徐 琮 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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